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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생고생을 마다하지 않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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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용래
댓글 0건 조회 11,867회 작성일 09-07-1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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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생고생을 사서 하는가? 내 인생살이가 뭐 그리 힘들다고 내 체력에는 도무지 무리인 280Km 를 평지도 아닌 산악자전거를 타야 하는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이 험난한 길을 달려야 하는가?  도대체 36시간 안에 완주를 요구하는 280 랠리가 나에게 무슨 의미라는 말인가? 한 발짝 조차도 내디딜수도 없는 상황에 나는 흙과 땀과 피로에 범벅이 되어 연신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고, 뙤약 볕 아래에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 가고 있었다. 어렴풋이 30시간 동안 260km 정도를 쉬지 않고 무박으로 달려온 시간들이 이제 E9번 지점에서 무너지고 말 것인가? 나는 지체 할 수 없는 서러움이 몰려 왔다.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한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였으며, 여기까지 온 것 그 자체만 가지고도 대단하고 할 만큼 했으니 포기 할 줄도 알아야 한다 라는 당위성에 대한 위안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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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인 경기를 즐기며 지난해 9회 제천280랠리에서 상위 완주를 한 친구가 한 동네에 살았고 나는 그저 그 친구를 통하여 철인경기, 280랠리 등에 대하여 전설적으로만 듣고 지나치는 형편이고, 그런 그들이 일견으로는 대단하게 느껴 지기도 함과 동시에 자긍심의 대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피곤한 인생살이가 반복되는데 왜 굳이 자기 몸을 혹사시키는데 마다 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그러니 내가 직접 해본다는 요원하기만 하였다. 그러던 지난 해 여름 집에서 즐기는 생활자전거를 가지고 친구 따라 인덕원에서 의정부까지 약 130km정도를 다녀온 이후 자전거에 취미를 가지게 되면서 가끔은 한강을 즐기곤 한 것이 전부였다. 사업상 거의 매달 해외 출장에 연습할 시간도 없는 데다가, 일반도로가 아닌 산악로를 280km 36시간 안에 들어 와야 한다는 대회 조건에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하다가도 또 다른 내심에서는 이 참에 나도 한번이라는 생각이 들 때, 완주보다는 참가에 목표를 두고 딱 해 넘어 갈 때까지 하루만 타자라는 위안으로 280랠리라는 무지막지한 여정에 접어 들게 된 것이다.

 

대회를 3개월 앞둔 금년 3월경에 어렵사리 산악용자전거를 내 형편 치고는 비싸게 구입한 나는 아내에게 280랠리라는 목표를 넌지시 비치며 비싼 자전거를 구입한 죄를 사할 겸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 또한 사업의 힘든 과정을 돌파해야 하는 현실에 직원들에게도 하나의 노력하는 신념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대회가 다가 올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으며, 게다가 퇴근 후 가까운 청계산 임도라도 타볼라치면 잦은 해외 거래처들과 출장으로 연습에 대한 부족함이 내심 불안감으로 가고 있었다.

 

대회 하루 전인 금요일 결전의 날을 앞두고 2-3시간이라도 자고 가 자라는 철인 친구의 조언에 도 불구 하고 마음은 안정을 잡지 못하였으며 아내가 밤 11시부터 만든 김밥을 짊어지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의 응원과 격려 속에 밤 12 50분경에 의왕 집을 나서서 양평레츠포츠 공원으로 향하였다. 중간에 자전거를 싣고 가는 차량을 보면서 위안도 되었다. 출발장소에 도착하니 새벽 2 30, 주차하고 출발 복장을 점검하는데 아뿔싸 사이클용 신발을 안 가지고 왔다. 난감함에 방법이 없었다.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수밖에,, 다행이 철인친구 큰형님께서 충주에서 오셔서 지원을 자청하신단다. 감사할 따름이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경기 내내 지원을 하신 큰형님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3시부터 시작된 출발전야 행사는 재미 있기도 하고 완주를 기원하는 연이 올라 갈 때는 비장한 자세로 자신의 의지를 가다듬기도 하였다. 새벽시간에 따라 부른 애국가가 그저 새롭기만 하였다. 자신은 없지만 이왕이면 완주 하자고 결연한 의지를 달래기도 하였다.

 

새벽4시 출발을 알리는 신호와 더불어서 참가한 890여명의 완주가 시작되었다. 나는 철인 친구를 따라 새벽 아스팔트 길을 달려 A코스인 송전탑코스 임도에 접어 들 때 힘을 아끼자는 생각에 중간아래로 처지지만 안기로 하였다. 목표는 280km 이기 때문이고 솔직히 나 자신도 평지에서라도 280km를 달려 본적이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의 체력에 대한 감이 없었다.

항소리 임도에 접어 들 때는 날이 밝고 있었다. 다운힐이라는 것을 배운 적이 없는 터라 내리막길이 더 어려웠고 너무 조심하다가 종당에 넘어지는 실수로 무릎부상을 입었다. 산음임도를 내려와 A코스가 종료되는 도로에서 지원조 형님이 아침을 준비 하여 주셨다. 라면에 김밥에 모두가 꿀맛이다. 이제 49km정도 왔다. 갈길 이 머나멀고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시 간단한 보급품을 충전하여 B코스 인 도토리 코스, 클린턴 코스로 접어드니 뜨거워 지는 날에 왜 이리 지독하게 산길이 가도가도 끝이 없게 느껴 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B7정도에서 어떤 사람이 내리막길에서 크게 다친 듯 넘어져 있었다. 잠시 후 올라가는 앰블런스차를 보면서 더욱 주의를 하고 내려 오는데 하도 양손 브레이크를 잡으니 팔목과 손바닥이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아파온다. 중간에 흘러 내리는 계곡물이라도 만나면 너무나 반가움에 달려 지체 없이 달려 들어 시원함을 만끽하였다. B8 코스를 달려 내려오니 한낮의 뜨거움은 더하여 어느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하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사이 아내가 사이클용 신발을 가지고 왔는데 더없이 힘이 났다.

 

다시 출발이다. 신론리 임도를 접어 드는데 어디가 끝인지는 몰라도 어서 이 산길을 벗어 나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한참을 달려 끌 바를 해야 하는 산길이 나오더니 이내 험한 내리막길이다. 기가 질렸다. 도무지 타고 내려갈 자신이 없다. 온갖 바위 길에 푹 패인 좁다란 산길에 나는 앞서 내려간 철인친구 뒤를 전천이 끌 바를 하여 내려 왔다. 싱글출구에서 체크포인트를 지난 후 잠시 취하는 휴식에 지원조 큰형님의 격려에 점점 지쳐가는 내 자신을 위로 한다.  C5가 시작되는 임도에 들어서자 가파른 언덕길이다. 갈운리 임도를 지나, 몰운리 임도를 빠져 나오는데 벌써 오후 5-6시경이 된듯하다. K5 에서 지원하시는 형님이 끓여주는 간단한 저녁요기에 나는 난감한 생각에 빠져 들었다. 이제 지나온 길은 133km 남짓, 철인리더 친구는 오늘 저녁 식사는 반듯이 양동역까지 가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는 서산에 걸쳐 있고 나는 표현할 수 없는 기분에 잡혀 있었다. 앞으로 양동역까지 60km 정도를 달려 가야 한다.  그러나 어쩌랴.. 여기서 어떻게 할 수도 없다. 길이 있으니 갈뿐이고, 친구가 앞에 가니 따라 가야 한다.

 

금왕리 임도를 지나니 날은 금새 땅거미가 지고, 있는 힘을 다하여 계정리 임도를 빠져 나오니 K6 구간이다. 철인친구가 어찌나 내달리는지 깜깜한 밤이고 산길에 나 홀로 떨어 져 달릴 때는 두렵기도 하였다. K6에 다다른 나는 아스팔트에 깔아 졌다. 산간 밤하늘의 낭만과 고요함 조차 느낄 여유도 없다. 산아래 펼쳐진 도시의 불빛이 부러울 뿐이다. 식수가 있다는 아저씨의 안내로 물을 연거푸 들이 키니 다소 살 것 같다. 어서 양동역 D5 구간까지 가야 저녁도 먹고 눈도 붙일 수 있다는 철인 친구의 말에 다시금 용기를 가지고 일어 섰다. 지도에는 대규모 수목장이라고 적혀 있는데 어디가 어딘지 무뎌질 뿐이고 밤은 10시를 넘어 가는데 도대체 갈길 이 끝이 없다. D1 지점에 이르러 어떤 여성분이 언덕길은 내려 가는데 내가 아무리 해도 못 따라 내려갈 속도로 가다가 출구에 이르러 길을 잘못 들길래 내가 그 길이 아니라고 소리 치니 다시 나왔다. 참으로 대단한 내공을 가진 여성분이다.

 

먼저 앞서간 철인 친구는 D2지점에서 만나 양동역 근처에 다다르니 밤 11시가 넘었다. 식당도 문을 닫았다. 배도 고프고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간다. 절박한 배고픔에 닫혀 있는 식당 문을 두드려 주인 아주머니에게 밥을 달라고 매달리니 측은 한지 밥을 준다.  저녁밥을 먹으니 12시 자정이다. 철인친구는 지금까지 온 나의 실력이나 속도를 볼 때, 여기서 자면 완주를 못한다며 다시 출발하자고 재촉이다. 기가 막히다. 남은 100km 16시간 안에 못 간다니, 투덜거리며 다시 따라 나서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안장에 올라가기도 힘들어 바셀린을 듬뿍 발라도 효과도 없다. 매월임도를 올라 가는데 다들 아무 말도 없다. 그저 길이 있으니 갈뿐이다. 몇몇 단체 일행이 지나간다. 다들 묵묵히 간다. 그 누구도 지껄이는 이가 없이 패달 굴러 가는 소리만 들릴 뿐 조용하게 라이트만 밝히며 올라갈 뿐이다.

매월임도를 내려 오니 일요일 밤 새벽 2, 또다시 국도를 끼고 D9 에 이르니 고래산 임도다. 가도가도 끝이 없다. 도대체 이놈의 산길이 언제 끝나나? 고비 고비 중간 마다 바닥에 널부려저 드러누운 사람들이 늘어 난다. K7에서 확인을 마치고 다시 D10으로 오르니 새벽 닭이 운다. 새벽 4시 정도다. 누적 205Km 달려 왔다. D17 매점을 지날 때 물이라도 한 모금 먹고자 하였으나 이미 날은 밝고 지금의 쳐진 속도라면 완주를 못한다는 철인 친구의 질책에 빨래판 업힐 이 시작되는 D18에 도착하였다.

 물은 떨어진 지 오래인데, 친구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을 구하여 준다. 너무도 고맙다. 나는 이놈의 가파른 빨래판 언덕을 올라 가는데 체력이 바닥남을 느꼈다.  결국 비룡산임도 정상에서 나는 퍼졌다. 도저히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들었다. 새벽 산아래 펼쳐지는 산길마다 안개로 장관인 듯 수십 개의 산허리를 돌았지만 내게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정상에서 나는 큰 대자로 뻗었다. 순간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 지기 시작하였다. 체력도 안되는 주제에 하프나 도전하지 완주를 욕심 내다니, 뭐 때문에…… 막심한 후회가 밀려 오는데 산길에 드러누워 꼼짝도 하기 싫었다. 지나가는 어느 동호회 분이 퍼져 있는 나를 보더니 꿀을 주셨다. 신속한 피로 회복에 좋다는 말씀이 였다. 감사할 따름이다.

꿀을 한 모금 받아 먹는데 옆에서 나를 내려다 보며 씨익 웃는 여성선수의 모습에 나는 너무도 화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이를 악물었다. 저런 가련한 여자도 꿋꿋이 달리는데 하물며 대장부인 내가 라는 생각에 다시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K8체크포인트를 지나, 흐르는 계곡물에 머리와 발을 담그니 살만하다. 다시 D20부터 시작되는 싱글 구간에 이르러 나는 표정을 잃어 가고 있었고 D23 구간을 나올 때 온몸이 마비되는 통증을 느꼈다. 지원조 형님이 아침을 차려 주는데 넘어 가지도 않았다. 드러누워 한입 넣은 아침 식사 맛은 25년 전 군대 제대 후 여태껏 먹어본 그 어떤 식사 보다고 훌륭하다. 참으로 고마움을 깊이 느낀다. 허나 아직도 두 개의 큰 산을 넘어야 D코스가 끝난다. 여기서 끝낼 것인가? 아니다 가자. 철인 친구는 지속적으로 용기를 주었다. 지나온 230km 구간이 떠올랐다. 어떻게 왔는데.. 그래 가자. 철인친구의 격려를 받으며 다시금 올라 탔다. 가랭이는 찢어 질 듯 아파 오르고 퉁퉁 부었고 금새라도 피 터질 기세다. 잠시라도 안장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양동임도를 넘어 내려가니 구간 250km K9지점을 지나니 집사람과 아이들이 와 있다. 나는 참으로 용기를 얻었다. 내 사랑하는 가족들은 나를 응원하여 주었다. 나는 혼신의 노력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완주를 위해 가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어찌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다가 온다. 금왕리 임도를 넘어 가는데 내 체력은 내의지 대로 되지를 않았다. 쉬기만 하면 아무데나 드러 눕는다. 정신도 혼미해져 간다. 이젠 아예 작은 언덕도 더 이상 올라 갈수도 없다. 아주 기다 시피 하여 금왕리 임도를 내려 오니 K10지점, 누적 264km를 지나는데 아내가 물을 뿌려 주고 아이들이 격려를 한다. 이제 남은 코스는 E8부터 E 14구간 인 비룡산 임도다.

그러나 E9에서 시작된 비포장도로와 흙먼지는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아스팔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열기와 피곤함에 나는 다시 바닥에 드러 누었다. 하늘은 노랬다. 길가 밭에서 일하는 노부부가 나를 측은하게 쳐다 본다. 나는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나는 철인 친구에게 말하였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고 너만이라도 완주 하라고, 훗날 내 친구가 나 때문에 완주를 못하였다는 말은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철인친구가 지난 출발 시점부터 나의 완주를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용기와 격려를 주고 이끌어 왔는지를 안다. 그러나 미안 하게도 나는 280랠리가 진정으로 무엇인지, 무엇을 요구하는지, 무슨 자세로 임해야 완주를 할 수 있는지를 느낄 때, 준비 없이 시작한 무모한 나의 도전에, 막급한 후회와 더불어 포기라는 생각뿐이 였다. 친구에 대한 미안함을 생각 하더라도 내자존심에 상처를 받더라도 여기 까지가 나의 한계이다. 그리고 지난 30시간 동안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기에 포기 할줄도 알아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40평생 후반을 지나면서 산에서 운동을 하면서 꼬박 이틀을 새운 것도 처음이다. 그러고 내몸이 이렇게 육체적으로 힘든 상태를 맞이 하는 것도 군대 생활에서도 없었다. 내 몸의 통제력을 나스스로 잃어 갈 때 나는 아주 처참한 모습으로 다죽어 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언덕길을 꿋꿋이 오르는 한 여자선수가 기이할 따름이다.

 

친구는 나를 정상까지 이끌더니 순식간에 내리막을 달려 E12 지점의 임도로 사라졌다. 나홀로 쳐진 나는 패잔병이였다. 그러나 임도에 들어 서는 순간 다시 주저 앉아 나는 내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내가 처한 현실은 무엇이고 나를 둘러싼 환경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치열한 생존경쟁 과 사업이 성패, 개성이 넘치는 친구관계, 병든 부모, 가장으로서의 역할, 쉽지 안은 인간관계 등 헤아릴 수 없는 현실이 주마등 처럼 나를 스쳐 지나 갈 때 나는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페달을 밟았다. 오늘 죽더라도 오직 완주를 하는 것 만 머릿속에 박혀 들기 시작하였다. 철인 친구가 가르쳐 준 대로 임도 오르막길에 끌 바를 하면 시속 3-4km지만 저속이라도 페달을 밟으면 9-10km 시속이 나오니 가르쳐 준 대로 어떤 언덕길이라도 타고 오라 가자 마음 먹었다. 내리막길이 나올 때는 과감하게 내리 달렸다. 무릎을 동여매고 온갖 테이프로 칭칭 감고 내달렸다. 그러나 아주 견딜 수 없이 가랭이에 통증이 올 때, 어릴적 수안보 시골촌놈 시절에 경험 한 대로, 쑥이 만사형통임을 보아 온지라, 임시처방으로 한 뭉큼 쑥을 뜯어 틀어 엉덩이를 틀어 막고 다시 내달렸다.

 

나는 사력을 다해 처음으로 다운힐 다운 다운힐을 하였다 , 돌부리도 웅덩이도 거침이 없었다. 아는 어떻게 산길을 내달렸는지 까마 득 하다. 이제 비룡산 임도 K11 지점을 지나니 골인 지점이 얼마 안 남았다. 그리고 먼저 간다던 철인 친구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친구와 손을 잡고 골인 지점을 향하였다. 지원하여 주신 큰형님과 아내와 아이들이 손을 들어 주었다. 골인지점을 두고 나는 내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그것은 33시간 33분을 쉬지 않고 달린 내 자신에 대한 희열과 성취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한다는 사실이었다. 작고 뚱뚱하고 못나고 가진 것 없다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이 내 신체 구석구석이 사랑스러웠다. 다리, 손목, , , 어깨, 머리, 무릎, 머리, 그 어느 것 하나 280랠리에 협조 하지 않은 놈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강한 긍정과 정신력으로 진전되어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 보다 더 과감하고 당당하게 맞서 나가라는 스스로의 자심 감을 가지게 되었다. 완주 증을 받아 들 때 나는 감격하였다. 그리고 내면에 흐르는 뜨거움은 지난 33시간 33분이라는 대기록에 나 자신을 진정으로 다시금 돌아 보게 하는 시간 이였다. 나는 완주를 해내었고 오늘의 이 진실한 감격은 나의 삶에 투영되어 내 반듯이 33시간 33분을 달리는 정성과 전략으로 나의 삶을 헤쳐 가겠노라고 다짐 하였다.

오늘날 스스로 목숨을 쉽게 버리는 혼란한 시대에 나는 감히 말한다. 소중한 자신을 포기하고 버리기 전에 280 랠리를 완주를 해보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약육강식의 구도하에 본질이 퇴색되어 지고, 정체성을 잃어가는 혼란한 세상이지만, 자신의 의지력에 따라 현실의 절망과 부정도 긍정으로 볼 수도 있다라고 느낄 때 280랠리만한 기회가 있을까?  이번에 피땀으로 성취한 영구결번 891!!! 내 삶에 이보다 더한 가치가 있을까? 

대회를 기획하고 주관하신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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