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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 후기

길고긴 280 후기 - 인생을 배우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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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eacloud
댓글 0건 조회 7,961회 작성일 10-07-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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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미쳤어'
강원도 산속을 1박 2일 36시간 동안 280킬로를 달리는 랠리에 나가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연신 해대는 말입니다.
하긴 지금 후기를 쓰면서 스스로 생각해봐도 분명 미쳤던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니, 아직도 살짝 미친듯 하고, 맛이 간 것도 같습니다.

랠리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면서 온몸을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듯하던 아픔과
피곤은 거의 사라지고 있지만, 머릿 속은 아직도 온통 강원도 산악의 그림같던
풍광과, 스위스 언덕을 연상시키는 고냉지 채소밭의 품경들로 꽉 차 있습니다.
앞,뒤,옆에서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페달질하던 많은 '미친'사람들과
그들이 건네던 힘겹지만 즐거움 가득 담겨있던 미소와, 화이팅 소리와 비오는 밤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휴식을 청하던 모습들이 여전히 눈에 아른거립니다.

올해 11회 280은 저와는 인연이 없는듯 보였습니다.
'Back to Origin'이라는 11회 대회의 별칭이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진 않았지만,
처음 시작당시의 취지대로 빡센 생고생으로 완주를 호락호락하게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렇다면 내가 해낼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감이 커져갔고,
때맞춰 아내는 그날에 이틀동안 집을 비우게 되니, 애들 밥 잘 챙겨 먹이고
살림살이 잘 하고 다른 약속 잡을 생각 말라고 미리부터 신신당부를 주었던
터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회사 일은 꼬일대로 꼬여 최악의 스트레스 속에 잠시도
자리를 비우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내가 갈 수 있을까, 가더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가고 싶었습니다. 목표를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고 극한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280 랠리는 준비과정부터가 만만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참가 신청 해서 출발선상에
서기까지도, 온갖 참석 못할 구실과 핑계와 상황과 반대를 넘어서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280코스의 험준함과 랠리자체의 고생 못지 않은듯 합니다.
그렇게 회사 동료 리키님과 둘이서 정선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정선 공설운동장.
사람이 많이도 모였습니다. 전년보다 참가인원이 대폭 줄었네 어쩌네 해도
5백명이 넘는 참가자와 그에못지않은 지원조가 새벽에 이렇게 우글대는 걸 보면,
분명 다들 미친게 틀림없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모였을 것입니다. 저처럼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누군가는 만류하는 가족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대판 싸우고 나온 사람도
있을 법 하고, 각자가 280을 나와야 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오지 못할 상황을 극복한 스토리가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참석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도 있겠고, 혹은 아무생각없이 얼떨결에 동호회
선배를 따라 나오게 된 경우까지 있을 것 같습니다.
웬 이런 잡스런 생각을 많이하게 되는지 머리가 복잡하긴 복잡했나 봅니다.

비 예보가 있어 다들 걱정하고 있었는데, 잔뜩 구름이 낀 하늘에서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본부장님 인사 말씀에서 비가 안와 다행이지만,
오더라도 다 각오하고 오신 거니 즐기기 바란다고 하십니다. 명언입니다.
비가와도 기필코 완주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합니다.

감사패 전달도 있습니다. 이번 랠리를 위해, 또 지금껏 280을 위해 수고해주신
분들에게 280참가자 명의로 감사패를 전달합니다. 주최측도 아니고 무슨 조직의
장도 아닌, 우리 참가자들 명의로 한다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그것도 괜히
멋있어 보입니다. 대통령 표창같은 것을 큰 영광으로 알지만, 사실은 '국민일동'
으로부터 받는 감사패 같은게 있다면 그거야말로 제대로 된 영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새벽 4시. 마지막 5초부터 참가자들이 다같이 카운트다운을 따라 외치며
화이팅 소리와 함께 출발합니다. 강원도의 어둠을 가르며 수많은 불빛들이
질주를 시작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긴 불빛의 행렬은
보는것 만으로도 장관입니다. 괜한 감동이 가슴을 짠하게 쓸고 지나갑니다.

페달질을 시작합니다. 옆에 리키님은 적당한 선두그룹에서 랠리를 진행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앞쪽으로 치고 나가자고 재촉합니다. 3~40명의 선두그룹에
붙어 주행합니다. 읍내를 지나고 약간의 도로 라이딩이 끝난후 첫 번째 업힐이
나타납니다.
내리는 사람도 생기도 정체현상도 시작되고 혹은 타고 혹은 끌바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랠리는 누가 뭐라고 간섭하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정해진 틀 속에서 각자의
계획과 전략대로 움직이면 되는, 자유가 있어 좋습니다.
랠리를 완주하는 사람도 있고,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다 종점까지 완주해야만 할 이유가 있을테고, 또 접어야 할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다같이 달리지만 전략이 다 다르고 페이스가 다르고 방식이 다를 것이고,
중간에 보게 되는 풍경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고 랠리를 마친 후의 이야기거리도
다 다를 것입니다......

이대로 비가 안오면 덥지도 않고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바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폭우는 아니고 부슬비처럼 안개비처럼
하염없이 구질구질 내립니다. 강원도 높은 산속에서는 비조차 힘을 잃고
겸손하게 내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래도 금새 몸은 젖어듭니다.
첫번째 임도를 마치고 도로와 접하게 되는 아우라지 휴게소를 1차 지원포인트로
약속했으나 내려오니 보이질 않습니다. 랠리초반이라 그냥 통과합니다.

50 km 지점, 임계에서 식당에 들러 뜨끈한 육개장으로 아침식사를 합니다.
라이딩은 배부르고 푸짐하게 먹는 것이 동반되어야 그 즐거움이 배가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지원조가 준비해준 수박도 먹고 복숭아도 먹고 다시 출발합니다.
이제는 헤어지면 100킬로 가까운 임도를 돌고 돌아 저녁 때나 되어서야 만날 수
있습니다. 중간에 점심을 해결해야 하므로 빵도 챙기고 참치캔도 집어 넣고
초코바 연양갱,에너지 바에 물도 두통 배낭에 넣고 나섭니다.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지원조가 저녁 때까진 휴식을 좀 취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임계천 계곡길 트래킹 코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났으면 이 코스를 폐쇄하고
우회할 수 있으니 좋겠다는 내심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앞사람을 따라 비맞은 바위길을 조심조심 자전거를 매고 걷습니다. 거리는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시간은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여러사람이 미끄덩
자빠지고 넘어집니다. 크게 다친사람이 없어 다행입니다. 코스를 참 재미있게
구성하려고 애썼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까지도 발은 젖지 않았었는데,
마지막에 결국은 퐁당 담글 수 밖에 없도록 물을 건너야만 하는 코스.
이제 온 몸이 홀딱 젖었습니다.
다시 임도길. 이제는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오르고 또 오르고, 타다 걷다를
반복하며 하염없는 임도길을 굽이굽이 돌고 또 돕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법.
인생길도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비록 힘들고 괴롭고
짜증나는 오르막일지라도, 정점을 지나면 반드시 시원스레 내달릴 수 있는
내리막 길이 있을터이니 참고 계속 한 발 한 발 내딛느냐 중단하느냐가 결국은
승패를 가르는 차이일 터.......

내가 헉헉거리며 힘들어 할 때, 옆을보면 동료의 숨소리도 헥헥거립니다.
내가힘든만큼 다른 사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평범한 인생진리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해발 1000 미터를 넘는 강원도의 험산준령도 그렇게 한걸음씩 내딛다 보니
정상이 나타나고 다운힐이 시작됩니다. 업힐의 고생을 신나는 다운으로
보상받습니다. 한참을 내리쏘니 몸이 추워지기 시작합니다. 높고 험한 산 속에서
비에 젖은채로 내달리니 당연합니다......먹을 것 챙겨넣는다고 여벌 옷을
배낭에 넣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어서 다운힐이 끝나고 업힐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추위는 사라질테니까...
인간이란 정말 간사합니다. 방금전까지도 그렇게 지긋지긋하고 싫기만 하던
업힐을 금새 마음바꿔 다시 만났으면 하고 바라게 되니, 끔찍했던 군대생활도
가끔씩 그리워지듯 정말 미스테리합니다~

신발이 젖어 달리는 내내 내 발은 어떤 지경일까 궁금해집니다. 퉁퉁불은 오징어
처럼 되어있지 않을까 상상이 됩니다. 빨리 베이스캠프로 정해놓은 사북에
도착해서 샤워좀 하고 발을 좀 말릴 수 있으면 더없이 행복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수 있는 것은 함께 고생하며 달리는 동료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호흡이 맞고 마음이 맞고 페달링이 맞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지.....

끝이없는 듯한 아득한 업힐을 오르다 보면 처음에는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 받다가,
점점 말이 짧아집니다. 결국에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보며 말없이 걷습니다.
고생길도 처음에는 서로 격려도 하고 상대를 배려도 해주고 하다가 그것이 오래되면 말이 없어지나 봅니다. 모든 것이 귀찮고 힘듭니다.  아내랑 요즘 말이 없어진 게
함께 한 고생길이 너무 길어서인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수없이 업힐과 다운힐을 반복하다 보니 지겹습니다. 이제 그만 내려갔으면 싶은
생각이 간절해 집니다. 아직 갈길이 먼데 물이 달랑달랑해서 걱정입니다. 계곡물이
나오면 보충하리라 생각하는데, 물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춥기도 하고
축축하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고 물도 걱정이던 차에, 뜻하지 않게 지원조를
만납니다. 어떻게 올라왔는지 신기한데 다른 지원팀도 눈에 띕니다.
갑자기 빵빵한 보급 덕에 힘이 납니다. 참치랑 과일이랑 챙겨먹고 다시 나섭니다.
페달링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스스로도 느껴집니다.
하장면에 오후 5시를 예상했으나 좀 더 빨리 진행한 덕에 3시에 도착해서 맛난
된장찌개로 이른 저녁식사를 합니다. 옷도 갈아입고 잠시 뽀송뽀송한 느낌을
즐깁니다. 비도 잠시 멎어 줍니다.
죽음의 멜바코스라는 이도령 1,2 관문을 가능한한 밝을 때에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집니다.

출발하는데 다시 비가 내립니다. 이런 된장...찌개.....
여기저기 부지런한 타 동호회 사전답사 사진을 보았던터라 가히 그 어려움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았던 이도령 제 1관문.
과연 악명그대로였습니다. 길도 없고, 베어놓은 나무가지와 그루터기들은 발
내딛기를 힘들게 하고, 자전거는 끌수도 없고 어깨에 매도 바닥에 닿는지라
두손으로 하늘높이 들치고선 한 걸음씩 떼어 놓아야 합니다. 아까운 시간
다 죽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한 줄로 늘어서서  한발 한 발 내딛는 앞 뒤 10 여명이
친구같은 느낌이 듭니다. 맨 위에서 '3분 휴식' 하고 외치면 모두들 그 자리에서
자전거를 내려놓고 서서 휴식을 취합니다. 제아무리 훈련된 군대도
우리만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 다시 출발' 하면 일제히 자전거를 들쳐매고 올라갑니다. 숨이 턱에 차고
땀인지 빗물인지 얼굴에서 쉼없이 흐르고, 덩달아 화도 나려고 합니다.
이 짓을 왜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래도 완주하고야 말리라는
오기도 따라 옵니다.
얼마를 올랐는지 위에서 '여기는 정상' 하고 외칩니다.
뒤에서 누군가 '이게 정상이야? 비정상이지' 하고 대꾸하는 바람에 모두 웃습니다.
'진짜요?' 하고 의심스런 질문을 던질 때, 두번째 사람이 '정상맞습니다. 조금만
힘내세요' 합니다.
어느새 우리 일행은 한 동호회 소속 같습니다.
먼저 오른 사람도 저와 리키님을 포함, 뒤에서 같이 오르던 사람까지 기다려
줍니다. 그렇게 10명 가까이 모였습니다. 한 분이 수고했다며 초코렛을 하나씩
건네주십니다. 우와~ 감동입니다.
일행중에 코스 답사를 하신 분이 있어 다음코스에 대한 브리핑을 잠시 듣습니다.
바로 급경사 다운힐이니 아주 천천히 조심조심 진행할 것. 다 내려가면 도로업힐을
좀 한 후 임도 업힐후에 2차 관문을 만나게 될 것.거기는 이만큼 경사가 가파르지는
않고 대신 좀 길다는 것.....
햐~ 자세히 꿰차고 계신 그 분이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설명들은 대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정말 엄청난 각도의 다운힐입니다. 코스를 반대방향으로
만들었으면 큰일이었겠다 싶습니다. 주최측에 감사한 마음까지 듭니다.
내년엔 이코스를 거꾸로 해서 업힐코스로 만들어도 좋을것 같습니다.
내년엔 안와야지......흐흐흐.....

잘 하면 2차 관문도 어둡기 전에 넘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나름 열심히
달리지만 이제 속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걷는 속도랑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2차 관문에 도달하기 전에 어두워지고 맙니다. 어느 분이 사전답사
후기에 적어 놓았던 글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어둡기 전에 2차관문에 도달할 가능성은 없다!'
어휴, 자성예언도 아니고 괜히 읽어봤습니다.

이도령 2차 관문 앞에서 다시 모인 일행이 7~8명. 왜 정확한 숫자가 기억안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귀찮고 힘들어서 세어 볼 생각도 없었던 듯 합니다.
2차 관문앞에서 다같이 휴식을 취합니다. 누군가 비에젖은 시멘트에 드러눕자
너도나도 기다렸다는듯 다같이 눕습니다.
비젖은 길바닥이 이렇게 편안한지 처음 알았습니다. 여기서 이대로 10분만
잤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누군가 또 모두들 일어나라며 대장이 되어
일행을 재촉합니다.
원래 코스였던 터밭 사이로 들어가는 곳을 주인이 허락을 안해주는 바람에
코스가 바뀌어져 있습니다. 그대로 콘크리트 길로 좀 더 올라갑니다. 누군가
이대로 임도길로 연결돼어서 그냥 2관문을 넘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좀 더 지나니 원래의 싱글길과 만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잠시 안장에 앉아 타다가 결국은 모두 끌바로 진행합니다. 어둡고 코스표시가
좀 떨어져 있어 길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몇 번의 짧은 헤맴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불빛 두 개가 접근하길래 뭔가 했더니, 처음에 길을 잘못 들었다가
우리 일행 불빛을 보고 방향을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비에 젖은 나무와 돌이 많아 길이 무척이나 미끄럽고 위험합니다. 연신 앞에서
미끄러운 바위조심, 나무 조심, 가파른 길 조심, 머리위 나무 조심 하며 신호를
줍니다. 앞에서 뒤로 자연스럽게 신호를 전달합니다.
먼저 간 사람이 뒷사람 자전거를 받아 주기도 하고, 라이트로 길을 비쳐주기도
합니다. 호흡이 척척 맞고 서로를 배려하는 새로 구성된 멋진 한 팀의 모습입니다.
우리보다 늦게, 한밤중에 여기를 통과할 뒷사람들에 대한 걱정도 큽니다.
안전하게들 통과하기를 바라는 수 밖에 달리 해줄 것은 없습니다.
이런 코스를 만들어놓은 이도령님의 성격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도
잠시 논의합니다.
그 와중에 서서히 체력의 한계가 왔음을 느낍니다. 오른쪽 무릎이 삐걱거리며
아파옵니다.
가슴이 답답해지며 호흡이 불편해 집니다. 심호흡을 해 가며 이제나 저제나
싱글길이 끝나기를 고대합니다. 빨리 내려가서 샤워좀 했으면, 눈 좀 붙였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완주고 뭐고 아무생각도 없고 어서 이 지긋지긋한 이도령
관문만 끝났으면 하는 생각 밖에 없습니다.

드디어 '끝~!' 하고 앞쪽에서 소리칩니다. 아~!!! 체력고갈 일보직전에서 제 때에
관문을 나오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사북으로 향하는 도로로 접어들자 여러 지원팀들이 자기 선수들을 기다리다가
박수를쳐 줍니다. 고맙고 힘이 납니다.
누군가 우리가 선두그룹이라고 알려줍니다.
저와 리키님은 숙소로 향하고, 다른 분들은 같이 모여서 더 진행한다고 해서
인사하고 헤어집니다. 통성명도 없었지만 1,2 관문의 고생길을 함께 해서인지
떠나시는 모습을 보는게 마음이 짠합니다. 안전하게 선두권으로 완주하시기를
바라는 맘을 담아 보냅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주고 받고, 친구가 되고, 다시금 헤어지고 하는 것도 인생길을 닮은
280의 또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10시가 조금 넘어 사북의 숙소로 들어섭니다.
완전 기진맥진입니다. 밥해놓고 찌개 끓여놓고 기다리던 지원조가 반갑게
맞아 줍니다.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밥을 먹으니 겨우 정신이 돌아옵니다.
월드컵 16강전 응원을 하고 싶었지만 잠시 붙인 눈은 축구 끝나고 다음날
알람 소리 울리기 까지 꼼짝 없이 세상모르고 잡니다. 잠들기 전 비가 그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새벽 2시 30분.
서둘러 일어나 빵하나씩 먹고 나섭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기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완만한 도로 업힐을 시작하며 덜깬 잠이 다 달아납니다. 콘크리트
임도로 접어들 때 입구에 트럭을 세워놓고 있던 다른팀 지원조 분께서 다가와
죽을 한 컵 내어 주십니다. 안양에서 오셨다며 이것저것 격려의 말씀을
건네주십니다. 랠리의 즐거움과 감동 중의 하나가 이처럼 다른 동호인들에게도
박수와 격려를 보내주는 따뜻한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4시간 가까이 자고 나왔는데, 우리 앞서 지나간 사람이 50명도
안될 거라고 전해줍니다.
밤을 새워 그 험한 이도령 1,2 관문을 건너 오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콘크리트 임도에 접어드니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내리는 어둠속의
산길을 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둘이서 올라갑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지 수시로 확인하게 됩니다. 앞서가는 불빛들을 따라잡으며
제대로 가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안개도 자욱해서 사방이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발걸음을 떼어 앞으로 나아가야만 방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날이 희미하고, 분명하게 보이는 것 없는 안개길 같다 할지라도,
주저하고 망설이며 머물러 있어서는 아무것도 알 수도, 얻을 수도 없고,
움직이고 행동해서 확인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깨닫습니다.

빗속에서 어떤 분들은 빵을 꺼내 드시고 있고, 어떤 분들은 길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밤길을 쉬지않고 달려왔는지, 우리처럼 잠시라도 눈을 붙였는지
궁금해집니다.
갈림길에서 길을 찾는 우리를 보고 앉아 있던 분이
'왼쪽입니다' 하길래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접어드는데, '아니,아니, 오른쪽입니다.
제가 볼때 왠쪽....' 하십니다. 그 옆에는 한 분이 누워 휴식을 취하고 계시는걸 보니
두분 모두 어지간히 지치신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길가르쳐 주는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하시는 것이 고맙고 미안합니다. 좌우가 헷갈릴 정도로 정신이
없으신 상태인데.......

화절령인지 뭔지 정말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습니다. 어제보다 훨씬 더 높은 것
같습니다. 강원도의 힘을 제대로 느낄수 있는 산입니다. 서서히 지쳐갈 때 쯤 드디어 내리막이 시작됩니다. 업힐후에는 다운힐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는 하루 지나도
변함이 없습니다.
잠시 비가 멎고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는 순간, 숨막힐 듯한 아름다운 풍광에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바다에 떠있는 섬들이 모인 다도해를 보듯,
구름 사이사이로 솟아오른 강원도의 힘찬 산봉우리들이 형언하기 어려운
멋진 광경을 선사해 줍니다. 카메라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길 바로 옆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직 낭떠러지 입니다. 천길 낭떠러지라는 표현이
이 곳 강원도 산길을 두고 나온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랠리초반 잃어버린 저의 휴대폰은 어쩌면 저 천길 낭떠러지 밑에서 그동안의
열정을 뒤로하고 서서히 배터리가 방전되면서 영원한 휴식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단길 다운힐이 이어집니다.
경사도 완만하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어제처럼
돌탱이 다운길에서 전복 위험 때문에 신경 바작바작 쓰이던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밤새도록 고생하며 왔을 랠리 참가자들에게 가장 확실한 보상이 되는 코스인듯
합니다. 2시간 가까이 끝없이 다운힐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산중턱인지 구름을 뒤집어쓴 산봉우리들이 저 아래로 보입니다.
그렇게 최고의 코스를 지나와 신동예미역 부근에서 지원조가 끓여준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 식사를 합니다.  아까 스쳐왔던 참가자 분들이 속속 지나갑니다.
어느 순간 내가 뒤쳐졌다가도 앞서기도 하고, 다시 뒤쳐지고 하는 것이
랠리와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뒤에 있다고 너무 안달할 필요도 없고, 앞서 있다고 우쭐해 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내 페이스대로 꾸준히 진행하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다시 출발해서 또 만나게되는 이도령님의 흔적. 이번엔 도강코스입니다.
1,2관문에서 받은 인상이 있어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어렵지는 않고
몸과 자전거를 강물에 씻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이제 완주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납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 옆길을 유유히 라이딩합니다.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습니다.
이제 여유있게 도착 지점을 통과하면 됩니다.
하지만, 'Back to Origin'의 정선 랠리는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준비해두고 있었습니다.
급하게 치솟아 오른 벌떡 시멘트 업힐.
멋도 모르고 리키님과 페달링으로 올라갑니다. 엇.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철문이 막혀 있고, 자전거를 들어 넘기고 울타리를 넘어 서고서도 가파른 업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런.....끝이 없습니다. 끝나나 싶어 안장에 오르면 곧바로 숨어있던 업힐이
떡하니 버티고 나섭니다. 기대와 좌절과 실망을 번갈아하며 결국 말없이
끌바로 올라갑니다.
마지막까지 너무한다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한 우리도
힘든데, 밤새도록 와서 이 마지막 산을 만난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사람을 위해 걱정하는 체하지만, 사실은 제 입장에서의
불평과 불만을 돌려서 하는 것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오르고 올라 드디어 마지막 체크 포인트가 우리를 맞아주고, 다운힐이 시작됩니다.
이제 업힐이고 다운힐이고간에  마지막입니다.리키님이 마지막 집중력을 잃지말고
천천히 진행하자고 합니다. 참으로 시기적절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생각같아서는 그자리에 서서 뒤에오는 모든 분들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내 갈길을 가야하니 그럴수는 없고, 마음속으로 다들
마지막에 서두르다 넘어지지 말고, 마지막 집중력을 발휘해서 안전한 라이딩
되시기를 바라며 갈길을 갑니다.
한참을 내려가는데 고냉지 채소밭입니다.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것만 같던
느낌의 산이었는데, 반대쪽으로 넘어와보니 매일매일 주민들이 농사하러 다니는
뒷마당입니다. 좀 황당합니다.
어제 정말 지겹도록 오르내렸던 고냉지 채소밭.
힘은 들었지만 풍경은 정말 멋졌습니다. 여기 분들은 농사일 보러 다니실때
가파르게 경사진 밭 모양 때문에 수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일을 하실 것을
상상해보니 이런 라이딩은 호사라는 생각도 듭니다.

계속되는 다운힐로 정선 운동장으로 골인합니다.
기다리던 진행자 분들과 지원팀들이 아낌없이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줍니다.
해냈다는 안도감과 주위의 격려에 진한 감동이 눈끝으로 몰려옵니다.
31시간 29분이라고 찍힌 완주증을 받으며 정말 기뻤습니다.
아내가 생각나고, 동호회 분들이 생각나고, 어머니 생각도 나고, 집에 강아지도
떠 올랐습니다. 나를 업무상 힘들게 만들던 사람도
떠올랐습니다. 다 잘될것만 같습니다.

도전과 성취를 맛볼 수 있도록 해준 11회 280랠리.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감을 가질수 있게 해준 소중한 랠리였습니다.
코스를 둘러보고, 만들고, 표식을 하고, 준비하신 주최 측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름도 모르고 생전 처음 뵙는 분들이지만, 랠리 내내 길 가르쳐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박수 보내주시고 음식 나눠 주시고 이런저런 교훈을 말로
행동으로 가르쳐 주신 모든 참가자 분들, 지원조 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 보내주셨던 박수를 진심을 담아 그분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함께 고생하며 경륜과 실력으로 이끌어준 리키님 덕분에 편안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라이딩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라는데,
그 말을 확인할 수 있던 기회였습니다.
운전해주고 밥해주고 생명의 보급역을 담당해준 지원조 두 분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쟁이 아니라 배려이며,
성취라기 보다는 철저한 자신과의 싸움인 랠리의 매력과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정말 멋진 랠리였습니다. 미쳐서 행복했습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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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dol842님의 댓글

sodol842 작성일

첫번째 싱글구간에서 두번째로 "정상맞습니다" 라고 외치고, 미리 답사하여 싱글 정상에서 다음 구간을 브리핑했던 닉네임  "파치"  입니다. 내용을 보니 같이 라이딩했던 분들 같군요. 이렇게 글을 읽으니 또 반갑네요!!!
다음 기회가 되면 또 갈거고 그때 보면 서로 인사하죠 ㅎㅎ^^ 우리 모두 또 미치러 가죠!!! 고! 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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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구름님의 댓글의 댓글

바다구름 작성일

아~~
파치님이셨군요.
이렇게 또 한번 온라인에서 만나니 정말 반갑습니다.
그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표현도 못했지만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장면이 생생히 떠오르네요. 다음에 미쳐서 또 뵈면 좋겠습니다 ^^ 늘 즐겁고 안전한 잔차생활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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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랠리님의 댓글

280랠리 작성일

생생한  현장감과 함께 ,랠리를 즐길줄 아시는 분이다 생각이 듭니다.
더욱더 랠리를 사랑해 주시리라 생각 됨니다.

저희가 참가자를 대표하여 작년11월부터, 설계하고 .3월부터 답사 하여 랠리3일전,아니 당일까지 노심초사
준비해온 과정에서 어렵고 힘들었던일들이 님의 후기를 읽고서 참 잘했다 쉽습니다.
감사 합니다.
12회도 아름다운 우리산하에서 일탈할수 있도록 준비해 드리겠습니다.-욕은 하도 많이 먹어서 장수 할꺼고요,ㅎㅎㅎ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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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구름님의 댓글의 댓글

바다구름 작성일

랠리중에 솔직히 욕도 많이 했지만, 정말 수고 많으셨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런 수고와 정성을 통해서 저희들이 행복을 느끼고 때로는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기까지 하니
충분히 보람을 가지셔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장수에 지장없으실 겁니다.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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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점프님의 댓글

버스점프 작성일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합니다. 지원조로 참가한 저도 사전에 지도를 보면서 열심히 공부한 덕에 꼭 제가 라이딩 한 기분입니다.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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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님의 댓글

지구별 작성일

정말 상세한 라이딩 후기 감사합니다. ^^
서로 서로 배려하는 280 라이딩 문화가 참 보기 좋네요..
경쟁이 아닌 랠리라서 좀 더 서로서로 챙겨주는 분위기인듯합니다..
내년에 280 준비하려고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