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회 280rally 후기-첫번째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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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rally가 끝나고 3일 후 무박님이 제10회 280rally 공지를 카페에 올리셨다.
지난해엔 280rally에 대한 회원들의 관심이 많아서인지 지원조 포함 12명이 한 달 이상 rally에 대한 계획과 준비를 한 것으로 기억된다. 금년엔 늦은 공지와 주력 회원들의 무관심으로 준비가 소홀했었다.
호호님은 1년 동안 벼르고 있던터라 일찌감치 참가 신청을 하였지만 펌킨님, 기관차님 그리고 나는 우여곡절 끝에 접수 마감 당일인 6월 15일에서야 신청하였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280rally에 참가 신청을 하고나니 완주에 대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출정 당일까지 틈만 나면 자료 검색을 하였다.
6월 20일 rally 참가자 회의에서 각자의 준비물, 출발시간, 숙영지 그리고 코스에 대한 계획을 간단히 마치고 27일 0시에 공설운동장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메탈님께서 혼자서라도 지원을 해보겠노라고 말씀하셨지만 혼자서 지원한다는 것이 전투조 보다 몇 배 힘든 일이기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기관차님은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시고 펌킨님과 나는 다음날 숙영지 답사를 하기로 하였다.
21일 아침 펌킨님과 집결지와 숙영지 답사를 위해 양평으로 출발하였다.
진행부에서 숙영지로 추천한 양동면(175km지점)과 고송리 일대(215km지점)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일대는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여서 코스에서 조금 떨어진 220km 지점에 숙소를 예약했다.
메탈님의 경험에 의하면 첫날 무조건 200km 이상 진행해야 완주 가능성도 높고 다음날 편안하다고 조언을 한 것이 220km 지점에 숙영지를 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첫날 숙영지까지 가지 못할 상황이라면 메탈님의 지원을 받아 양동면에서 고송리 숙소까지 차로 이동하여 수면을 취한 후 새벽에 다시 양동면으로 돌아와 나머지 코스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숙소 예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펌킨님의 의견이 메탈님에게 지원을 부탁한다는 것이 부담이 된다고 하여 무지원 라이딩으로 마음을 굳혔다.
26일 오전 호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사의 중요한 일 때문에 1년 동안 기다리던 280rally를 함께 참가할 수 없게 되어 미안하다는 애석한 소식을 전해왔다. 동료로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었다.
평소 보다 일찍 퇴근하여 애마와 준비물을 챙겨 놓고 마눌님께 내일 아침 대용으로 김밥 6줄만 싸달라고 부탁하니 지난번 380 때에도 배낭이 무거워 힘들었다고 하고선 식당에서 사먹지 또 김밥을 싸냐고 애정어린 핀잔을 한다.
김밥을 싸가는 것은 혹시 아침식사 때 매점에 많은 라이더가 한꺼번에 몰려 시간을 지체할 우려가 예상되었기에 짐이 돼도 싸가려 했던 것이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잠시라도 눈을 붙일 요량으로 잠을 청해 보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11시 30분 쯤 애마를 타고 공설운동장으로 나갔다.
운동장에는 기관차님과 메탈님, 무명님, 조교님, 그리고 호호님이 나와 있었고 이내 펌킨님이 당도하였다.
애마를 차에 매달고 출발준비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펌킨님, 기관차님, 그리고 나 정초는 차에 올라 양평으로 향하였다.
2시경 단월레포츠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진행요원이 학교운동장으로 주차를 안내하였다. 운동장의 첫 광경은 마치 야전부대의 캠프를 방불케 했다. 전날 도착한 팀들은 텐트를 쳐놓았고 전투요원들은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어떤 팀들은 야식을 먹고있고, 또다른 팀들은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우리팀이 도착한 이후에도 계속 전투조와 지원조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배번을 수령하여 애마에 부착하니 이제 본격적인 rally가 시작되는 기분으로 기대와 긴장감이 돌았다.
호호님이 준비한 김밥으로 야식을 하고, 김밥 2줄씩 개인 배낭에 분배해 그것으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호호님은 양평 단월레포츠공원까지 오셔서 rally 출발시까지 전투조를 뒷바라지 하였고 특히 송탄mtb의 전투조와 지원조를 소개해 주면서 파주팀은 무지원으로 왔으니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3시 30분경 출발장소인 단월레포츠공원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간단한 대회식순이 이어졌고 드디어 출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정각 4시 800여명의 라이더들이 출발게이트를 줄지어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첫 임도인 송전탑코스 입구까지는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데 어둠을 뚫고 앞서가는 무리들의 라이트 불빛과 후미등의 반짝거림이 멀리까지 이어졌다. 한밤중 산속을 구비구비 돌아 올라가는 이러한 모습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면 마치 화룡이 산을 휘감아 돌며 승천하듯 멋진 장면이 연출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도로구간을 지나 첫 번째 임도인 송전탑코스의 완만한 업힐이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오르니 몸의 열기가 느껴졌다. 체력을 조절하기 위해 벌써부터 끌바하는 라이더도 보였다.
1시간여를 페달질하니 주변의 사물들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우리팀은 맑은 산 중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첫 번째 목표지점인 K1(50km지점)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굴렸다.
처음엔 서로 비슷한 속도로 달려나갔다. 대략 40km 정도 지날 때부터 점점 배낭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내가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펌킨님과 기관차님은 부지런히 앞으로 치고 나갔다.
A구간의 송전탑코스, 향소리임도, 산음임도를 지나 8시쯤 K1 지점에 도착하니 도로 양쪽으로 지원차량으로 가득하다. 우리팀은 한 쪽에 자리를 잡고 김밥으로 아침을 대용하는데 기관차님이 다른팀(아자)에서 육게장 한 그릇을 얻어와 우리는 서로 나누어 먹었다. 정말 눈물나게 맛있었다. 고종이 임진왜란 때 피난가서 먹었다던 도루묵에 비할 바가 아니였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도로를 업힐하는데 길옆에서 누군가 부른다. 송탄mtb 지원팀이다. 막무가내로 와서 식사하고 가라고 한다. 식사를 했다고 하니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고 해서 우리팀은 시원한 매실차를 대접받고 이내 B코스를 향해 출발하였다.
B코스는 도토리코스와 클린턴코스로 약 47km 구간으로 집행부의 자료에 의하면 난이도는 A코스와 비슷하다고 한다.
아침식사와 휴식으로 재충전한 우리팀은 빨래판 업힐을 시작으로 B코스 정복에 나섰다.
펌킨님과 기관차님은 여전히 앞서 나갔다.
나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힘차게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 보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였다. 동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무리를 했던지 60km 정도에서 오른쪽 무릎에 이상 징후가 오기 시작했다. 업힐시 약간의 힘을 주어도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380, 고양rally 때도 이런 현상이 없었는데 훈련부족으로 생각되었다. 걱정이 앞섰다. 이제 겨우 5분의 1 정도 밖에 못 왔는데 여기서 무리하게 팀원들을 쫒아가다가는 중도하차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무거워 졌다.
클린턴코스로 기억되는데 여기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다.
내리막길을 다른팀과 2열로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나의 좌측 앞쪽에서 달리던 라이더가 임도 길가 쪽으로 뻗어나온 나뭇가지를 미리 대처하지 못하고 갑자기 나의 진행 방향으로 핸들을 튼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추돌 사고였다. 설상가상 그 지점이 굵은 돌덩어리가 많은 곳이여서 넘어지면서 어께와 팔에 충격을 받았다. 뒤따라오던 펌킨님이 많이 놀랬는지 부상 정도를 살펴 주었다. 다행히 라이딩을 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상대편도 부상을 입었지만 괞찬은 모양이었다. 부상 부위에 약을 바르고 다시 길을 이어갔다.
한참을 가다보니 배낭의 무게로 허리는 쑤셔오고 오른쪽 무릎은 고장나기 시작했고 날씨는 더워져 숨구멍이 조여왔다.
문득 나무늘보님 생각이 났다. 지난해 280rally 때 힘들었던 점 하나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임도가 하나같이 똑같아 너무 지루하다는 것이다. 나무늘보님이 그런 말을 할 땐 그런가보다 했는데 장소는 다르지만 내가 rally에 참여하고 보니 실로 동감되었다.
클린턴코스의 마지막 지점에 다다르니 펌킨님과 기관차님이 수박을 먹으며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송탄mtb 지원조 한 분이 지원차량으로 안내하며 수박을 내놓으며 먹으라고 하신다. 그렇지않아도 갈증이 혀를 갈라놓고 있는 터라 수박 몇 조각을 쉴새없이 입에 쳐넣었다. 세상에 어떤 수박이 이보다 달고 맛있을 수가 있나 싶다. 어찌나 맛있고 개운한지 그때 상황 같아선 수박 1통은 거뜬이 먹어치울 것 같았다.
갈증을 풀고 나니 눕고 싶었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하여 우리팀은 송탄mtb 지원팀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다음 목적지인 공주휴게소로 떠났다.
신론리임도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 발통을 굴리다 보니 내리막길에 노란 리본이 임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우측 싱글로 올라가라는 표식이다. 첫 번째 싱글은 길지 않으나 처음부터 끌바로 정상까지 올라가야 했다. 끌바로 정상에 오르니 펌킨님과 기관차님이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주변의 라이더들도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눕거나 앉아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어떤 라이더가 " 야호, 싱글다운이다 " 라고 외치면서 쏜살같이 내려간다. 뒤이어 우리도 싱글다운을 하니 초반을 지나자마자 완전 돌탱이 길이다. 그래도 파주mtb 자존심이 있지 남들처럼 끌바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대략 200m 정도의 돌탱이 싱글길을 바짝 긴장을 하며 쿵덕쿵덕 요리조리 내려갔다.
싱글다운을 마치고 도로를 따라 업힐을 하다 길가 표지판에 공주휴게소 500m라고 안내되어 있었는데 그 500m가 상당히 멀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오후 2시경 113km 지점인 공주휴게소에 도착하였다.
복잡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휴게소 안은 그리 넓지도 않은데 식사를 하는 팀은 몇 안된다.
소머리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하고 메탈님이 주신 이온가루를 생수에 타서 물통 두개에 꽉꽉 눌러담았다.
식사 후 잠시 쉬다보니 라이딩할 때는 몰랐는데 다친 팔꿈치와 어께 부위가 삶은 계란 반쪽만큼 부어올라 있었다.
다음 목표지를 향해 휴게소를 나서는데 왠 여인이 기관차님께 인사를 한다. 얼굴을 돌려 보니 일산샆에서 많이 보았던 분이기에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완주 격려를 한 후 다음 여정을 위해 출발 준비를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분이 kelley님 이었다.
늦은 점심을 하고 공주휴게소를 떠난 것은 2시 40분경이었고 다음 목적지인 양동면(175km지점)까지는 갈운리임도, 몰운임도, 금왕리임도, 계정리임도를 정복해야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온 속도로 보아 6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하여도 한낯의 태양아래 라이딩한다는 것은 정말 인내를 요구했다. 임도 그늘에는 누가 보던 말던 편안한 자세로 누워 오침을 즐기는 라이더들도 간간 눈에 띄었다. 나도 시원한 그늘 아래서 잠시라도 쉬어가고 싶었다. 기관차님도 많이 지친 표정이다. 그런데 펌킨님은 지치지도 않는건지 아니면 오늘 220km 지점까지 가기 위해선 쉴 여유가 없는건지 마냥 GO다. 점심 때 " 정초님, 뭐 바쁠거 있나요. 날도 더운데 쉬엄 쉬엄 가시죠." 하던 펌킨님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부지런히 다음 목적지를 향해 쉼없시 페달을 돌렸다.
그런데 드디어 올 것이 오기 시작했다. 허리통증과 무릎통증에 이어 똥꼬의 통증이 시작된 것이다. 팔과 어께 부상의 통증까지 내 몸의 상태는 종합 환자가 돼어가고 있었다.
비슷 비슷하게 생긴 임도를 돌고 돌고,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오르막에선 종합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어 안장에서 내려 끌바로 진행하고 내리막길에선 끌바로 처진 시간을 만회하고자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내려갔다. 이렇게 오르막에선 처지고 내리막에선 따라잡고를 반복하다보니 주변의 라이더들이 서로 낮이 익어져 눈인사를 할 정도였다.
어느덧 K6 (163km) 지점인 스무나리고개에 도착하니 지원차량이 도로 양 옆으로 진을 치고있었고 펌킨님과 기관차님이 길 맞은 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스무나리고개는 계정리임도 중간 정도에 있는데 정상 옆으로 대규모 수목장 조성지역이 있었다. 임도가 매우 잘 포장되어 있었다. 물 한모금 마실 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이내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이제는 강렬했던 햇빛도 그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잘 포장된 수목장 임도를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가니 추월당한 라이더들이 우리의 힘찬 페달링에 부러워 놀랜다. 내가 보기에도 그 순간 펌킨님과 기관차님의 폭발력은 rally가 아니라 race를 하는 라이더를 연상케 하였다.
서산에 해는 기울려면 아직 한참을 남았건만 산속의 어둠은 서서히 시작되었다. 어느새 라이더들의 애마에도 하나 둘씩 라이트가 켜지기 시작했다. 계정리임도를 빠져나와 포장도로를 따라 페달에 힘을 가하니 마침내 양동면에 8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도착하였다.
지금시각이면 서울이나 위성도시의 도로변 상가들은 불야성을 이루기 시작할 때이건만 이곳은 한적하기만 하다.
허기짐과 갈증으로 지쳐있는 우리는 제일 먼저 식당을 찾았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식당을 물으니 이 동네 유명한 식당이라며 한 군데를 알려주어 찾아들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70년대 서울 변두리 식당에 온 듯 허름하고 깨끗해 보이진 않았지만 주인 아줌마가 친절히 맞아준다. 배고픈 라이더에겐 어떤 음식인들 맛이 없겠는가마는 주인아줌마의 김치찌게 손맛은 방송국 프로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9시경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음 일정을 논의 하였다.
예정대로 숙소까지 가려면 45km를 더 가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컨디션 상태는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초행길을 야간에 산속 길을 계속 진행 한다는 것도 코스 이탈이 염려되었다. 하여 첫째, 양동면에서 숙박하는 것과 둘째, 애마를 이곳에 맡기고 택시로 예약한 숙소로 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에 다시 이곳으로 오는 것을 고려하였다.
그러나 양동면에서 숙박할 여관은 찾기가 힘들었기에 두번째 안으로 다시 의견을 모았다.
애마는 호호님의 도움으로 송탄mtb 숙영지에 맡기기로 했다.
택시는 양동역 앞 한쪽에 정차하고 있기에 기사에게 우리의 숙소인 삼가리 팬션으로 데려다 주고 다음날 새벽 3시까지 다시 와 줄 것을 타진해 보았으나 새벽에는 올 수 없다고 하기에 상황은 난감해 졌다.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고 만 것이다. 설강가상 숙영지 연락처는 펌킨님의 손전화에 저장되어 있었는데 배터리가 방전되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메탈님께 전화를 하여 카페에 올려논 주소로 팬션 연락처를 검색해봐 달라고 요청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아...이럴 때 지원조가 있었으면 이처럼 허탈하진 않았을 텐데...하면서 지원조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한편, 마음 한 구석에선 ' 날씨도 좋은데 까짓것 노숙하지 뭐 ' 이렇게 안위하면서 불안한 심정을 달래보기도 하였다. 한참을 이궁리 저궁리 하던 중 펌킨님이 팬션 명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해 내고는 집사람에게 전화하여 팬션 전화번호를 알아내었다. 희망이 보였다. 다만 팬션 관리인이 차를 갖고 우리가 있는 양동역으로 올 수 있느냐는 것이 관건이었다. 다행히 펌킨님이 팬션 관리인을 열심히 설득하여 양동역으로 우리를 픽업하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펌킨님과 나는 관리인이 올 때까지 양동역 앞 광장 바닥에 시체처럼 누웠다. 아직 바닥은 낯의 열기가 남아 등짝이 따뜻했다.
관리인이 우리를 픽업하여 숙소에 이르니 11시 45분이였고 간단한 샤워를 하자마자 잠이들었다.
새벽 2시 45분 오늘의 전투 시작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임전 태세를 갖추고 다시 양동면으로 출동하였다.
송탄mtb팀은 양동면 보건소 마당에 야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마당에는 대여섯 팀이 함께 야영을 하고 있었다. 송탄mtb 텐트는 조용했다.애마를 찾아와 출발하려는데 조금있다 식사하고 떠나라고 텐트 안에서 소리가 들렸지만 신세지기가 민망하여 신경써주셔서 고맙다는 말한마디와 함께 애마를 끌고 나왔다. 다른 한팀도 출발을 하기 위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의 위장은 요동을 쳤지만 밥 한 술 얻어 먹을 용기가 없었다. 우리는 새벽녁의 밥내음을 뒤로하고 3시 30분 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단월레포츠공원을 향해 양동면을 떠났다.
새벽 이슬을 맞으며 매월임도를 오르고 있자니 그 초입이 끝없시 올라간다. 우리 앞에 다른 팀도 라이트를 밝히며 열심히 페달질을 하고 있었다. 몸에선 벌써 열기가 오르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아직 미명인데 허기가 발을 잡았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면서 쵸코릿바와 육포 한 조각으로 허기를 잠시 메웠다.
매월임도를 나와 고래산임도로 진입할 즈음부터 날은 완전히 밝아왔다. 고래산임도는 지금까지의 다른 임도 보다 업힐이 길었지만 내리막 길은 다이나믹하여 시속 40km 이상 내리쏠 수도 있었다. 고래산임도를 빠져나오니 몇몇 지원차량이 보였다. 염치불구하고 한 지원팀에게서 얼음 냉수를 얻어 먹으니 목구멍의 갈증과 화기가 가시는 듯 개운함을 느꼈다.
계속해 페달을 밟아 고송리 마을회관 방향으로 애마를 몰아갔다.
8시경 고송리 마을회관을 조금 지난 삼거리 어느 식당에서 육게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나니 이제 몸도 마음도 든든해졌다.
식사 후 내리막 도로를 따라 가다 우측 비룡산임도로 들어서니 눈앞에 빠딱선 빨래판 업힐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안장에서 내려 끌바로 오르는데 몇몇 라이더는 힘겹게 페달링을 하며 오르고 있었다. 그 중 내 앞에 두 명의 여성 라이더는 고성능 엔진을 달았는지 잘도 올라갔다.
비룡산임도에서 부터 부부 라이더를 만났는데 그 후로 계속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함께 라이딩을 하였다. 그들과 라이딩하는 동안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빡세고 기나긴 비룡산임도를 빠져나와 양동임도로 진입하기 전 두 번째 싱글코스가 있었는데 입구부터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원인인 즉 약 10m 구간을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했기 때문이었다. 고양랠리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10시경 비룡산임도와 양동임도를 빠져나와 K9 (248km지점)에 도착하니 송탄mtb 지원팀이 부른다.
송탄mtb 지원팀은 매월간이역 옆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전투조 지원을 하고있었다. 우리도 한 자리 차지하고 지원팀의 융숭한 식사와 과일을 대접받았다. 감사한 마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매월간이역을 뒤로하고 떠나려니 일산팀의 지원조 한 분이 K9 표식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주셨다.
이제 남은 거리는 불과 37km 정도이다. 다시 양동면으로 들어와 금왕리임도와 벗고개를 지나 다시 비룡산임도를 타면 도착지가 한 달음 거리에 있다.
식사와 충분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온 몸에 힘이 솟는 듯 하였다.
순조롭게 금왕리임도를 정복하고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도로공사 중인 벗고개를 오르는데 모두들 끌바한다. 나도 내려서 끌바를 하는데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으로 복사 지열이 숨통을 조여왔다.
비룡산임도를 벗어나 도로로 들어서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는데 손전화 벨이 울린다. 전화의 발신자는 사랑하는 마눌님이였다.
화이팅 메세지였다. 역시 언제 어디서나 내 옆에서 응원해 주는 마누라에게 고마웠다.
다시 안장에 올라 마지막 언덕을 넘고 굴다리 밑을 지나 피니쉬라인을 향해 열심히 달려나가는데 펌킨님과 기관차님이 슈퍼 앞에서 손짓을 했다. 마지막 피니쉬라인은 그 동안 함께한 고통과 영광의 시간을 함께하고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였다. 우리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여유있게 먹고 펌킨, 기관차, 그리고 나 정초는 서서히 피니쉬라인을 통과 하였다.
280rally에 대한 만감이 교차되는 피니쉬라인이였다. 이로써 380rally와 고양rally에 이은 금년도 나의 세번째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응원해 주신 회원님과 송탄mtb회원님,지원조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해엔 280rally에 대한 회원들의 관심이 많아서인지 지원조 포함 12명이 한 달 이상 rally에 대한 계획과 준비를 한 것으로 기억된다. 금년엔 늦은 공지와 주력 회원들의 무관심으로 준비가 소홀했었다.
호호님은 1년 동안 벼르고 있던터라 일찌감치 참가 신청을 하였지만 펌킨님, 기관차님 그리고 나는 우여곡절 끝에 접수 마감 당일인 6월 15일에서야 신청하였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280rally에 참가 신청을 하고나니 완주에 대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출정 당일까지 틈만 나면 자료 검색을 하였다.
6월 20일 rally 참가자 회의에서 각자의 준비물, 출발시간, 숙영지 그리고 코스에 대한 계획을 간단히 마치고 27일 0시에 공설운동장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메탈님께서 혼자서라도 지원을 해보겠노라고 말씀하셨지만 혼자서 지원한다는 것이 전투조 보다 몇 배 힘든 일이기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기관차님은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시고 펌킨님과 나는 다음날 숙영지 답사를 하기로 하였다.
21일 아침 펌킨님과 집결지와 숙영지 답사를 위해 양평으로 출발하였다.
진행부에서 숙영지로 추천한 양동면(175km지점)과 고송리 일대(215km지점)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일대는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여서 코스에서 조금 떨어진 220km 지점에 숙소를 예약했다.
메탈님의 경험에 의하면 첫날 무조건 200km 이상 진행해야 완주 가능성도 높고 다음날 편안하다고 조언을 한 것이 220km 지점에 숙영지를 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첫날 숙영지까지 가지 못할 상황이라면 메탈님의 지원을 받아 양동면에서 고송리 숙소까지 차로 이동하여 수면을 취한 후 새벽에 다시 양동면으로 돌아와 나머지 코스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숙소 예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펌킨님의 의견이 메탈님에게 지원을 부탁한다는 것이 부담이 된다고 하여 무지원 라이딩으로 마음을 굳혔다.
26일 오전 호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사의 중요한 일 때문에 1년 동안 기다리던 280rally를 함께 참가할 수 없게 되어 미안하다는 애석한 소식을 전해왔다. 동료로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었다.
평소 보다 일찍 퇴근하여 애마와 준비물을 챙겨 놓고 마눌님께 내일 아침 대용으로 김밥 6줄만 싸달라고 부탁하니 지난번 380 때에도 배낭이 무거워 힘들었다고 하고선 식당에서 사먹지 또 김밥을 싸냐고 애정어린 핀잔을 한다.
김밥을 싸가는 것은 혹시 아침식사 때 매점에 많은 라이더가 한꺼번에 몰려 시간을 지체할 우려가 예상되었기에 짐이 돼도 싸가려 했던 것이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잠시라도 눈을 붙일 요량으로 잠을 청해 보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11시 30분 쯤 애마를 타고 공설운동장으로 나갔다.
운동장에는 기관차님과 메탈님, 무명님, 조교님, 그리고 호호님이 나와 있었고 이내 펌킨님이 당도하였다.
애마를 차에 매달고 출발준비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펌킨님, 기관차님, 그리고 나 정초는 차에 올라 양평으로 향하였다.
2시경 단월레포츠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진행요원이 학교운동장으로 주차를 안내하였다. 운동장의 첫 광경은 마치 야전부대의 캠프를 방불케 했다. 전날 도착한 팀들은 텐트를 쳐놓았고 전투요원들은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어떤 팀들은 야식을 먹고있고, 또다른 팀들은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우리팀이 도착한 이후에도 계속 전투조와 지원조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배번을 수령하여 애마에 부착하니 이제 본격적인 rally가 시작되는 기분으로 기대와 긴장감이 돌았다.
호호님이 준비한 김밥으로 야식을 하고, 김밥 2줄씩 개인 배낭에 분배해 그것으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호호님은 양평 단월레포츠공원까지 오셔서 rally 출발시까지 전투조를 뒷바라지 하였고 특히 송탄mtb의 전투조와 지원조를 소개해 주면서 파주팀은 무지원으로 왔으니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3시 30분경 출발장소인 단월레포츠공원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간단한 대회식순이 이어졌고 드디어 출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정각 4시 800여명의 라이더들이 출발게이트를 줄지어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첫 임도인 송전탑코스 입구까지는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데 어둠을 뚫고 앞서가는 무리들의 라이트 불빛과 후미등의 반짝거림이 멀리까지 이어졌다. 한밤중 산속을 구비구비 돌아 올라가는 이러한 모습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면 마치 화룡이 산을 휘감아 돌며 승천하듯 멋진 장면이 연출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도로구간을 지나 첫 번째 임도인 송전탑코스의 완만한 업힐이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오르니 몸의 열기가 느껴졌다. 체력을 조절하기 위해 벌써부터 끌바하는 라이더도 보였다.
1시간여를 페달질하니 주변의 사물들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우리팀은 맑은 산 중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첫 번째 목표지점인 K1(50km지점)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굴렸다.
처음엔 서로 비슷한 속도로 달려나갔다. 대략 40km 정도 지날 때부터 점점 배낭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내가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펌킨님과 기관차님은 부지런히 앞으로 치고 나갔다.
A구간의 송전탑코스, 향소리임도, 산음임도를 지나 8시쯤 K1 지점에 도착하니 도로 양쪽으로 지원차량으로 가득하다. 우리팀은 한 쪽에 자리를 잡고 김밥으로 아침을 대용하는데 기관차님이 다른팀(아자)에서 육게장 한 그릇을 얻어와 우리는 서로 나누어 먹었다. 정말 눈물나게 맛있었다. 고종이 임진왜란 때 피난가서 먹었다던 도루묵에 비할 바가 아니였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도로를 업힐하는데 길옆에서 누군가 부른다. 송탄mtb 지원팀이다. 막무가내로 와서 식사하고 가라고 한다. 식사를 했다고 하니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고 해서 우리팀은 시원한 매실차를 대접받고 이내 B코스를 향해 출발하였다.
B코스는 도토리코스와 클린턴코스로 약 47km 구간으로 집행부의 자료에 의하면 난이도는 A코스와 비슷하다고 한다.
아침식사와 휴식으로 재충전한 우리팀은 빨래판 업힐을 시작으로 B코스 정복에 나섰다.
펌킨님과 기관차님은 여전히 앞서 나갔다.
나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힘차게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 보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였다. 동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무리를 했던지 60km 정도에서 오른쪽 무릎에 이상 징후가 오기 시작했다. 업힐시 약간의 힘을 주어도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380, 고양rally 때도 이런 현상이 없었는데 훈련부족으로 생각되었다. 걱정이 앞섰다. 이제 겨우 5분의 1 정도 밖에 못 왔는데 여기서 무리하게 팀원들을 쫒아가다가는 중도하차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무거워 졌다.
클린턴코스로 기억되는데 여기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다.
내리막길을 다른팀과 2열로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나의 좌측 앞쪽에서 달리던 라이더가 임도 길가 쪽으로 뻗어나온 나뭇가지를 미리 대처하지 못하고 갑자기 나의 진행 방향으로 핸들을 튼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추돌 사고였다. 설상가상 그 지점이 굵은 돌덩어리가 많은 곳이여서 넘어지면서 어께와 팔에 충격을 받았다. 뒤따라오던 펌킨님이 많이 놀랬는지 부상 정도를 살펴 주었다. 다행히 라이딩을 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상대편도 부상을 입었지만 괞찬은 모양이었다. 부상 부위에 약을 바르고 다시 길을 이어갔다.
한참을 가다보니 배낭의 무게로 허리는 쑤셔오고 오른쪽 무릎은 고장나기 시작했고 날씨는 더워져 숨구멍이 조여왔다.
문득 나무늘보님 생각이 났다. 지난해 280rally 때 힘들었던 점 하나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임도가 하나같이 똑같아 너무 지루하다는 것이다. 나무늘보님이 그런 말을 할 땐 그런가보다 했는데 장소는 다르지만 내가 rally에 참여하고 보니 실로 동감되었다.
클린턴코스의 마지막 지점에 다다르니 펌킨님과 기관차님이 수박을 먹으며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송탄mtb 지원조 한 분이 지원차량으로 안내하며 수박을 내놓으며 먹으라고 하신다. 그렇지않아도 갈증이 혀를 갈라놓고 있는 터라 수박 몇 조각을 쉴새없이 입에 쳐넣었다. 세상에 어떤 수박이 이보다 달고 맛있을 수가 있나 싶다. 어찌나 맛있고 개운한지 그때 상황 같아선 수박 1통은 거뜬이 먹어치울 것 같았다.
갈증을 풀고 나니 눕고 싶었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하여 우리팀은 송탄mtb 지원팀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다음 목적지인 공주휴게소로 떠났다.
신론리임도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 발통을 굴리다 보니 내리막길에 노란 리본이 임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우측 싱글로 올라가라는 표식이다. 첫 번째 싱글은 길지 않으나 처음부터 끌바로 정상까지 올라가야 했다. 끌바로 정상에 오르니 펌킨님과 기관차님이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주변의 라이더들도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눕거나 앉아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어떤 라이더가 " 야호, 싱글다운이다 " 라고 외치면서 쏜살같이 내려간다. 뒤이어 우리도 싱글다운을 하니 초반을 지나자마자 완전 돌탱이 길이다. 그래도 파주mtb 자존심이 있지 남들처럼 끌바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대략 200m 정도의 돌탱이 싱글길을 바짝 긴장을 하며 쿵덕쿵덕 요리조리 내려갔다.
싱글다운을 마치고 도로를 따라 업힐을 하다 길가 표지판에 공주휴게소 500m라고 안내되어 있었는데 그 500m가 상당히 멀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오후 2시경 113km 지점인 공주휴게소에 도착하였다.
복잡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휴게소 안은 그리 넓지도 않은데 식사를 하는 팀은 몇 안된다.
소머리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하고 메탈님이 주신 이온가루를 생수에 타서 물통 두개에 꽉꽉 눌러담았다.
식사 후 잠시 쉬다보니 라이딩할 때는 몰랐는데 다친 팔꿈치와 어께 부위가 삶은 계란 반쪽만큼 부어올라 있었다.
다음 목표지를 향해 휴게소를 나서는데 왠 여인이 기관차님께 인사를 한다. 얼굴을 돌려 보니 일산샆에서 많이 보았던 분이기에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완주 격려를 한 후 다음 여정을 위해 출발 준비를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분이 kelley님 이었다.
늦은 점심을 하고 공주휴게소를 떠난 것은 2시 40분경이었고 다음 목적지인 양동면(175km지점)까지는 갈운리임도, 몰운임도, 금왕리임도, 계정리임도를 정복해야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온 속도로 보아 6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하여도 한낯의 태양아래 라이딩한다는 것은 정말 인내를 요구했다. 임도 그늘에는 누가 보던 말던 편안한 자세로 누워 오침을 즐기는 라이더들도 간간 눈에 띄었다. 나도 시원한 그늘 아래서 잠시라도 쉬어가고 싶었다. 기관차님도 많이 지친 표정이다. 그런데 펌킨님은 지치지도 않는건지 아니면 오늘 220km 지점까지 가기 위해선 쉴 여유가 없는건지 마냥 GO다. 점심 때 " 정초님, 뭐 바쁠거 있나요. 날도 더운데 쉬엄 쉬엄 가시죠." 하던 펌킨님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부지런히 다음 목적지를 향해 쉼없시 페달을 돌렸다.
그런데 드디어 올 것이 오기 시작했다. 허리통증과 무릎통증에 이어 똥꼬의 통증이 시작된 것이다. 팔과 어께 부상의 통증까지 내 몸의 상태는 종합 환자가 돼어가고 있었다.
비슷 비슷하게 생긴 임도를 돌고 돌고,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오르막에선 종합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어 안장에서 내려 끌바로 진행하고 내리막길에선 끌바로 처진 시간을 만회하고자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내려갔다. 이렇게 오르막에선 처지고 내리막에선 따라잡고를 반복하다보니 주변의 라이더들이 서로 낮이 익어져 눈인사를 할 정도였다.
어느덧 K6 (163km) 지점인 스무나리고개에 도착하니 지원차량이 도로 양 옆으로 진을 치고있었고 펌킨님과 기관차님이 길 맞은 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스무나리고개는 계정리임도 중간 정도에 있는데 정상 옆으로 대규모 수목장 조성지역이 있었다. 임도가 매우 잘 포장되어 있었다. 물 한모금 마실 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이내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이제는 강렬했던 햇빛도 그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잘 포장된 수목장 임도를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가니 추월당한 라이더들이 우리의 힘찬 페달링에 부러워 놀랜다. 내가 보기에도 그 순간 펌킨님과 기관차님의 폭발력은 rally가 아니라 race를 하는 라이더를 연상케 하였다.
서산에 해는 기울려면 아직 한참을 남았건만 산속의 어둠은 서서히 시작되었다. 어느새 라이더들의 애마에도 하나 둘씩 라이트가 켜지기 시작했다. 계정리임도를 빠져나와 포장도로를 따라 페달에 힘을 가하니 마침내 양동면에 8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도착하였다.
지금시각이면 서울이나 위성도시의 도로변 상가들은 불야성을 이루기 시작할 때이건만 이곳은 한적하기만 하다.
허기짐과 갈증으로 지쳐있는 우리는 제일 먼저 식당을 찾았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식당을 물으니 이 동네 유명한 식당이라며 한 군데를 알려주어 찾아들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70년대 서울 변두리 식당에 온 듯 허름하고 깨끗해 보이진 않았지만 주인 아줌마가 친절히 맞아준다. 배고픈 라이더에겐 어떤 음식인들 맛이 없겠는가마는 주인아줌마의 김치찌게 손맛은 방송국 프로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9시경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음 일정을 논의 하였다.
예정대로 숙소까지 가려면 45km를 더 가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컨디션 상태는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초행길을 야간에 산속 길을 계속 진행 한다는 것도 코스 이탈이 염려되었다. 하여 첫째, 양동면에서 숙박하는 것과 둘째, 애마를 이곳에 맡기고 택시로 예약한 숙소로 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에 다시 이곳으로 오는 것을 고려하였다.
그러나 양동면에서 숙박할 여관은 찾기가 힘들었기에 두번째 안으로 다시 의견을 모았다.
애마는 호호님의 도움으로 송탄mtb 숙영지에 맡기기로 했다.
택시는 양동역 앞 한쪽에 정차하고 있기에 기사에게 우리의 숙소인 삼가리 팬션으로 데려다 주고 다음날 새벽 3시까지 다시 와 줄 것을 타진해 보았으나 새벽에는 올 수 없다고 하기에 상황은 난감해 졌다.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고 만 것이다. 설강가상 숙영지 연락처는 펌킨님의 손전화에 저장되어 있었는데 배터리가 방전되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메탈님께 전화를 하여 카페에 올려논 주소로 팬션 연락처를 검색해봐 달라고 요청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아...이럴 때 지원조가 있었으면 이처럼 허탈하진 않았을 텐데...하면서 지원조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한편, 마음 한 구석에선 ' 날씨도 좋은데 까짓것 노숙하지 뭐 ' 이렇게 안위하면서 불안한 심정을 달래보기도 하였다. 한참을 이궁리 저궁리 하던 중 펌킨님이 팬션 명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해 내고는 집사람에게 전화하여 팬션 전화번호를 알아내었다. 희망이 보였다. 다만 팬션 관리인이 차를 갖고 우리가 있는 양동역으로 올 수 있느냐는 것이 관건이었다. 다행히 펌킨님이 팬션 관리인을 열심히 설득하여 양동역으로 우리를 픽업하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펌킨님과 나는 관리인이 올 때까지 양동역 앞 광장 바닥에 시체처럼 누웠다. 아직 바닥은 낯의 열기가 남아 등짝이 따뜻했다.
관리인이 우리를 픽업하여 숙소에 이르니 11시 45분이였고 간단한 샤워를 하자마자 잠이들었다.
새벽 2시 45분 오늘의 전투 시작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임전 태세를 갖추고 다시 양동면으로 출동하였다.
송탄mtb팀은 양동면 보건소 마당에 야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마당에는 대여섯 팀이 함께 야영을 하고 있었다. 송탄mtb 텐트는 조용했다.애마를 찾아와 출발하려는데 조금있다 식사하고 떠나라고 텐트 안에서 소리가 들렸지만 신세지기가 민망하여 신경써주셔서 고맙다는 말한마디와 함께 애마를 끌고 나왔다. 다른 한팀도 출발을 하기 위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의 위장은 요동을 쳤지만 밥 한 술 얻어 먹을 용기가 없었다. 우리는 새벽녁의 밥내음을 뒤로하고 3시 30분 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단월레포츠공원을 향해 양동면을 떠났다.
새벽 이슬을 맞으며 매월임도를 오르고 있자니 그 초입이 끝없시 올라간다. 우리 앞에 다른 팀도 라이트를 밝히며 열심히 페달질을 하고 있었다. 몸에선 벌써 열기가 오르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아직 미명인데 허기가 발을 잡았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면서 쵸코릿바와 육포 한 조각으로 허기를 잠시 메웠다.
매월임도를 나와 고래산임도로 진입할 즈음부터 날은 완전히 밝아왔다. 고래산임도는 지금까지의 다른 임도 보다 업힐이 길었지만 내리막 길은 다이나믹하여 시속 40km 이상 내리쏠 수도 있었다. 고래산임도를 빠져나오니 몇몇 지원차량이 보였다. 염치불구하고 한 지원팀에게서 얼음 냉수를 얻어 먹으니 목구멍의 갈증과 화기가 가시는 듯 개운함을 느꼈다.
계속해 페달을 밟아 고송리 마을회관 방향으로 애마를 몰아갔다.
8시경 고송리 마을회관을 조금 지난 삼거리 어느 식당에서 육게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나니 이제 몸도 마음도 든든해졌다.
식사 후 내리막 도로를 따라 가다 우측 비룡산임도로 들어서니 눈앞에 빠딱선 빨래판 업힐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안장에서 내려 끌바로 오르는데 몇몇 라이더는 힘겹게 페달링을 하며 오르고 있었다. 그 중 내 앞에 두 명의 여성 라이더는 고성능 엔진을 달았는지 잘도 올라갔다.
비룡산임도에서 부터 부부 라이더를 만났는데 그 후로 계속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함께 라이딩을 하였다. 그들과 라이딩하는 동안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빡세고 기나긴 비룡산임도를 빠져나와 양동임도로 진입하기 전 두 번째 싱글코스가 있었는데 입구부터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원인인 즉 약 10m 구간을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했기 때문이었다. 고양랠리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10시경 비룡산임도와 양동임도를 빠져나와 K9 (248km지점)에 도착하니 송탄mtb 지원팀이 부른다.
송탄mtb 지원팀은 매월간이역 옆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전투조 지원을 하고있었다. 우리도 한 자리 차지하고 지원팀의 융숭한 식사와 과일을 대접받았다. 감사한 마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매월간이역을 뒤로하고 떠나려니 일산팀의 지원조 한 분이 K9 표식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주셨다.
이제 남은 거리는 불과 37km 정도이다. 다시 양동면으로 들어와 금왕리임도와 벗고개를 지나 다시 비룡산임도를 타면 도착지가 한 달음 거리에 있다.
식사와 충분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온 몸에 힘이 솟는 듯 하였다.
순조롭게 금왕리임도를 정복하고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도로공사 중인 벗고개를 오르는데 모두들 끌바한다. 나도 내려서 끌바를 하는데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으로 복사 지열이 숨통을 조여왔다.
비룡산임도를 벗어나 도로로 들어서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는데 손전화 벨이 울린다. 전화의 발신자는 사랑하는 마눌님이였다.
화이팅 메세지였다. 역시 언제 어디서나 내 옆에서 응원해 주는 마누라에게 고마웠다.
다시 안장에 올라 마지막 언덕을 넘고 굴다리 밑을 지나 피니쉬라인을 향해 열심히 달려나가는데 펌킨님과 기관차님이 슈퍼 앞에서 손짓을 했다. 마지막 피니쉬라인은 그 동안 함께한 고통과 영광의 시간을 함께하고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였다. 우리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여유있게 먹고 펌킨, 기관차, 그리고 나 정초는 서서히 피니쉬라인을 통과 하였다.
280rally에 대한 만감이 교차되는 피니쉬라인이였다. 이로써 380rally와 고양rally에 이은 금년도 나의 세번째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응원해 주신 회원님과 송탄mtb회원님,지원조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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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님의 댓글
독수리 작성일
아이스크림~
지금이야 글이지만,,,
저도 현장에서 완주자분들 맞이하면서 아이스크림이 넘 먹고 싶었습니다.
도전에 성공을 축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