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같이 길게 볼 280랠리-오버페이스를 후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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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접수처에서 배번을 받을 때 관계자분께서 이번 양평코스가 역대 280코스 중에서는 가장 무난한 코스여서 올해 완주하지 못하면 280랠리 완주하기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거리가 280킬로미터 게다가 땡볕, 아무리 쉬운 코스라 해도 거리와 기상 조건에 대한 압박이 있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280랠리는 팀라이딩을 권장하고 지원조의 지원을 중시하는데 내가 소속된 팀은 지원조가 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무지원에 매식을 할 계획을 세우고 참가했다. 그런데 남양주 에이스 팀에 아는 분이 있어서 그 분 말씀이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니까 어려워하지 말고 자기 팀을 만나면 지원을 받으라고 했다. 그 마음씀이 매우 고마워서 그러마고 했다.
출발하기 전 식사를 해 두어야 했으므로 집결지에서 가까운 단월중학교 운동장 한 켠에서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설렁탕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먹고 집결지인 단월레포츠 공원으로 향했다.
새벽 3시 출전 선수들이 단월레포츠 공원에 모였고 내빈 소개 등 식전 행사가 열렸다. 식전 행사의 끝 순서로 풍선에 매단 연을 날리는 행사가 있었다. 280랠리의 무사 완주를 기원하는 행사였는데 매우 특이하고 인상깊었다. 나도 연을 하나 받아서 하늘로 띄웠다. 우리가 띄운 연은 풍선에 매달려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그것은 완주를 다짐하는 우리의 꿈을 하늘 높이 실어 나르는 메신저였다. 풍선은 어두운 밤하늘에 높이 높이 올라서 별이 되었다.
새벽 4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선수들은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출발했다. 900여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한꺼번에 출발선을 통과하느라 약간 혼잡이 있었지만 잠시 후 긴 행렬이 이루어졌다. 행렬은 새벽 어둠을 밝히며 거대한 용이 비늘을 반짝이며 꿈틀거리듯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속에 섞여 긴장되고 흥분된 마음을 억누르며 힘차게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인원이 많아서 코스를 이탈할 염려도 없었다. 마치 시합을 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달렸다.
얼마 쯤 달리다 송전탑코스로 접어들었다. 그곳에서부터 오르막이었는데 앞에서 내려 걷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힘이 많이 남아 있는 나는 내리지 않고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한두 명씩 추월하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을 밟아 올라가니 차츰 불빛이 뜸해졌다. 그러면서 내리막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래 내리막길에서 잘 쏘는 성격이 아닌데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아서 조심하면서 달렸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와 도로에 접어들 때는 주위가 식별 가능할만큼 밝아졌다. 갈림길에는 도로 바닥에 페인트로 280이라는 표시를 해 놨기 때문에 지도를 보지 않고도 충분히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덕분에 편하게 달리지만 이 행사를 준비하는 운영진에서는 수없이 답사를 하고 구간 점검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향소리 임도에 접어들었을 때는 주위가 충분히 밝아서 라이트를 껐다. 원래 계획이 시원할 때 많이 달리기로 했기 때문에 특별한 생각없이 페달을 밟았다. 향소리 임도를 지나 산음 임도에 접어들어서 계속 페달링을 했다. 향소리 임도와 산음 임도를 지날 때 시원한 아침 공기 속에 밤꽃 향기를 비롯하여 수시로 신선한 향기가 섞여 코를 즐겁게 해 주었다. 산음 임도를 달리던 중 멀리 바라보았더니 엷은 아침 안개가 낀 산들이 첩첩이 둘러 싸여 있었다. 양평은 늘 강원도 가는 길에 거쳐가는 곳. 양수리 등 물이 많은 곳으로만 인식했었는데 양평의 산이 이렇게 깊었나 새삼 놀라웠다. 임도는 올라가는 것은 힘들어도 어느 정도 올라가서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내리막길에서 내리 쏘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치기 때문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내리막길을 달린다. 한참을 내려오다보니 허리도 아프고 힘이 든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K1 지점이었다. 시간은 6시 30분이었다. 원래 이곳까지가 약 50여킬로미터여서 이곳에 8시쯤 도착하여 아침 식사를 하려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도착해버린 것이다. 사전 답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K1 지점이 어느 정도에 있는지 예상을 할 수 없어 한 번도 내리지 않고 또 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빨리 도착한 것이다.
적당히 쉬면서 준비한 주먹밥이나 먹을까 하고 있는데 남양주 에이스 지원팀이 보였다. 그곳에서는 여성 두분이 막 아침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근처 수돗가에서 간단히 씻고 주먹밥을 꺼내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에이스 지원팀이 곁에 있었지만 아직 낯이 설었기 때문에 말을 못 붙이고 있었다. 그 때 내 얼굴을 알아본 에이스 팀 한 분이 국물과 김치를 갖다 주어서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었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계속 지나가고 있어서 마음이 약간 불안해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에이스 팀 중 내 뒤를 이어서 들어온 분이 식사를 마치더니 자기와 같이 가자고 한다. 그래서 기다리다가 같이 출발했다. 가다가 보니 앞에 지나갔던 사람들도 자기들 지원조를 만나서 식사들을 하고 있었다.
동행하는 분이 자기는 남양주 에이스 팀 카페지기 퍼플이라면서 이곳에 답사를 두어 번 와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코스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해 주었다. 도토리 코스에 접어들었다. 약간 경사가 있는 긴 업힐이었다. 우리는 같이 라이딩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서로의 실력을 몰라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약간은 경쟁하듯 달렸다. 그래서 서로 조금씩 천천히 자기 수준에 맞춰 가자고 했다. 그러자고 했으나 약간 힘에 부치는 길도 무리해서 달렸다. 그러다보니 마음속에 자꾸만 지금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 혼자서 꾸준히 가는 스타일이라 남과 같이 타면 약간 쫓기는 듯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 때도 그런 마음이어서 내 스타일대로 조절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오버페이스를 하게 된 것 같았다. 280랠리는 장거리이기 때문에 절대로 서둘러서도 안되고 오버페이스는 금물이라는 것을 마음 속으로 많이 생각했다. 그렇지만 출발해서부터 거의 시합처럼 페달을 밟아버린 것을 생각하니 틀림없이 오버페이스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완주를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오며 자신감이 없어지고 마음이 위축되었다.
도토리 코스는 이번 랠리 임도 중 가장 긴 곳이었다. 도토리 코스 종료 지점 쯤 도착하여 내 속도로 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속도를 줄였다. 퍼플님은 앞서 갔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도토리 코스를 벗어나자 포장도로가 있었고 많은 지원팀들이 응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떤 분에게 물을 청해서 마시고 클린턴 코스로 접어들었다. 날씨가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었다. 내 몸 또한 서서히 이상 증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장거리를 달리면 나타나는 무릎 통증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랠리에 참가하면서 제일 우려했던 것이 무릎 통증이었고 200킬로미터 쯤 지나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00킬로미터 지점부터 나타난 것이다. 작년에 어느 랠리에 출전했다가 끝부분에서 무릎 통증이 나타나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도 아침에 무리를 한 탓으로 그 증세가 더 빨리 나타난 것 같았다. 그리고 엉덩이 부분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평소에 쫄바지를 입지 않다가 랠리 때 입은 것이 잘못된 것인가? 평소에 입던 옷을 입을 걸 그랬나 머릿속이 복잡하다.
클린턴 코스를 나오면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점심을 먹기에는 시간이 일렀다. 클린턴 코스를 나오니 속초가는 국도가 연결되었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신나게 내려 달렸다. 휴게소 근처에 오자 에이스 지원팀 한 분이 기다렸다가 식사는 다음 한 코스 더 가서 하기로 했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계속 달려 신론리 임도로 접어들었다. 신론리 임도는 숲이 우거져서 임도까지 그늘이 들어 시원했다. 신론리 임도에 들어섰을 때는 힘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경사가 완만한 오르막도 내려서 끌고 가는 구간이 많아졌다. 왼쪽 무릎은 계속 통증이 왔고 엉덩이 역시 앉을 때마다 아팠다. 이번 랠리 코스 중에서 싱글 코스가 두 군데 있는데 이곳 신론리 임도 끝부분에 첫 싱글이 있었다. 임도를 타고 신나게 내려가는데 막 싱글에 접어들던 앞 사람이 멈추란다. 만약 그 분이 없었다면 표시가 있음에도 못 보고 한참 내려갈 뻔 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도 다음에 사람 올 때까지 잠시 기다리다가 안내를 해 주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자전거를 타기 힘들었다. 끌고 가기도 힘든 길이었다. 한참 끌고 가니 고개가 나왔다. 끌고 가는 도중 무릎이 계속 쑤셨다. 내려가서 점심을 먹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씁쓸한 생각을 하며 그곳에서 잠시 땀을 식히는데 선선한 바람이 부니 졸렸다. 잠의 유혹을 떨치고 내리막 싱글길을 내려왔다. 올라가는 것이 험한 만큼 내려오는 길 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오히려 재미있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산은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힘들게 고생을 하면 그만큼 보람과 대가가 있는 것이다. 싱글길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힘들어도 잔재미가 있어 지루하지 않다. 임도는 긴 오르막 긴 내리막이 있고 짜릿한 스릴은 없으나 상쾌한 맛이 있다. 반면 아스팔트길은 일시적으로 편하기는 하지만 지루하고 힘들다. 나는 대체로 싱글길을 좋아하는 편이다.
즐거움도 잠깐 짜릿한 싱글길을 벗어나니 포장도로가 있었다. 중간 중간 지원팀이 있었는데 에이스 지원팀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 거리며 달리는데 이길은 차량 통행이 꽤 많아 위험한 곳이었다. 한참 올라오니 길 옆에 에이스팀 현수막이 걸려 있어서 그곳으로 갔다. 이 때가 12시 30분쯤 되었다.
지원팀은 마을 들머리 큰 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먼저 온 퍼플님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나는 지원팀이 준 매실 음료수를 한 컵 마시고 점심이 준비되는 동안 근처 개울에서 다리를 씻고 자리에 누웠다. 한참 뒤 닭죽을 챙겨주는데 물이나 음료수를 많이 들이켰더니 식사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 의무감으로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는데 퍼플님이 자꾸 가자고 재촉을 한다. 그래서 난 이제 그만 타야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말을 하고 나니 왜 그리 기분이 비참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이 나올 때까지는 참으로 많이 생각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110킬로미터 탔고 앞으로 남은 거리는 170킬로미터 정도 아직 반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 무릎 인대는 쿡쿡 찌르고 엉덩이가 아프니 이대로 완주는 어렵다. 거리의 압박이 있으니 오기도 생기지 않았다. 여러 생각이 한바탕 머리 속을 휘저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자전거를 타면서 힘들어도 중간에 포기한 적이 없었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름 자전거를 잘 탄다고 평가하는데 그리고 이번 랠리에 참가한다고 했더니 꼭 완주하라고 격려도 받았는데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매우 마음이 착잡했다. 출발할 때 아이들에게 아빠 꼭 완주하고 오겠다고 장담도 했는데 오버페이스의 덫에 걸려 결국 포기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내 자신이 초라하고 왜소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나긴 인생을 살듯 서두르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여유있게 라이딩할 것을 하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오버페이스에 대해 아무리 후회해도 이젠 소용없다.
한참 쉬고 난 뒤 퍼플님이 또 출발하자고 한다. 그래서 먼저 가시라고 그러면 뒤따라 천천히 가겠다고 했다. 퍼플님은 자기도 다리가 아프다며 지원팀 중 한 명에게 테이핑을 요청했다. 테이핑 요법을 할 줄 아는 분이어서 퍼플님과 내 다리에 테이핑을 해 주었다. 테이핑을 마치고 엉덩이에 바셀린을 발랐다. 준비를 마치고 퍼플님이 먼저 출발했다. 오후 2시 그늘 밖은 태양이 작열하는데 출발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주저하다가 결국 출발했다. 점심을 먹고 쉬어서 그런지 아니면 바셀린을 발라서 그런지 엉덩이도 별로 안 아프고 다리도 그런대로 쓸만했다. 그래서 일단 가는데까지는 가 보자라는 생각으로 갈운리 임도로 들어갔다.
갈운리 임도는 초반 빨래판 콘크리트 길이었고 경사가 약간 있었다. 이제 경사가 있는 길은 미련없이 내려서 끌었다. 누군가가 말한 끌바는 전신운동이다라는 말에 웃기도 했지만 이제 끌바야말로 엉덩이를 보호하고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페달링을 하면 속도계에 7-9킬로가 찍히고 끌바를 하면 5킬로미터 정도 찍힌다. 오르막길은 끌고 가는 것이나 타고 가는 것이 큰 차이 없기 때문에 미련을 두지 않고 끌었다. 땡볕 아래 끌바를 하다가 나무 그늘을 스쳐 지나가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많이 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지 자연을 느낀다는 낭만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생각없이 달리다가 갑자기 만나게 되는 나리꽃의 선명한 자태를 보거나 산딸기 까치수영 등을 보면 잠시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그들과 내가 만나기 위해 그들 조상 대대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서 꽃을 피우고 지고 했을까
갈운리 임도를 벗어나는 곳에 콘크리트로 포장된 내리막길이 있었다. 그곳을 신나게 내려오는데 C7 지점 근처에 라이더 한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있고 옆에 두어 명이 서 있었다. 급히 제동을 하고 내려서 상황을 보니 신나게 내리막길을 오는데 앞에서 트럭이 올라오고 있길래 방향을 전환하다보니 그만 그 아래 있는 개울 쪽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것이다. 얼굴과 가슴에 상처를 입었는데 인중과 윗입술 부분은 살이 깎이면서 상처가 크게 났다. 다행히 의식은 잃지 않고 있었다. 동행한 동호회원에게 연락을 취하고 운영 본부 독수리님에게 상황을 전하여 구급대를 불러달라고 요청하고 동호회원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떴다. 랠리나 시합이 즐기자는 것인데 저렇게 다치면 가족들은 얼마나 속이 상할 것이며 본인도 한동안 라이딩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매우 안타까웠다. 조금 내려가니 구급차가 오는 것이 보여 위치를 알려주고 몰운 임도를 향해 달렸다.
몰운임도와 금왕리임도는 서로 이어져 있어서 크게 구분할 것 없이 달렸다. 몸도 지쳐 있었지만 마음이 크게 위축되어 있어 더욱 힘이 들었다. 몰운 임도를 지나 금왕리 임도에 접어들었다. 이제 절반 정도 왔다. 금왕리 임도를 지나는데 펑크가 났다. 펑크가 날만한 조건도 아닌데 갑자기 뒷바퀴 바람이 스르르 빠지는 것이었다. 예비 튜브를 꺼내 갈아 끼우고 바람을 넣었다. 그러나 휴대용 펌프로는 만족하게 넣을 수 없어서 지원팀들이 있는 곳까지 조심해서 타고 갔다. 한참 내려가니 길가에 지원팀이 있어서 긴펌프를 빌려 바람을 탱탱하게 넣고 계정리 임도로 들어섰다. 계정리 임도는 초반에 길의 상태가 좋았다. 길은 좋았지만 오르막을 만나면 힘이 빠진 상태라 끌바를 했다. 조금 급한 내리막을 속도를 내며 달리는데 앞에 가던 분들이 서서 정지 신호를 보낸다.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내리막길에 물골을 밭두둑처럼 설치한 곳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곳을 넘다가 제어가 안 되어 쓰러졌다고 한다. 눈과 코 부위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중학생이 있었는데 그 중학생은 최연소 참가자여서 기억이 있었다. 아빠와 같이 라이딩을 나섰는데 아빠가 부상을 당했으니 안타깝지만 완주를 못할 것 같았다. 운영 본부 독수리님께 다시 이 상황을 연락을 드리고 도로까지는 자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한참 동안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다시 뒷바퀴의 바람이 빠졌다. 이 때는 해가 많이 기울어 조금 있으면 서산을 넘어갈 때라 마음 또한 스산했는데 펑크가 나니 기운이 쭉 빠졌다. 할 수 없이 길가에 자전거를 세우고 바퀴를 분리해서 타이어를 손으로 훑어 보니 타이어에 조그만 가시가 박혀 있었다. 아까 펑크의 원인이 이것 때문이었는데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튜브만 갈아 끼웠으니 다시 펑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기본을 지키지 않는 나 자신을 탓하며 가시를 빼고 펑크 자리에 패치를 붙여 바람을 넣어 임시 조치를 하고 다시 달렸다. 바람이 충분하지 못하여 속도는 내지 못하고 살살 타고 갔다.
드디어 160여킬로 지점인 K6 지점에 도착했다. 에이스 지원팀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반갑게 맞아 준다. 삼겹살을 구워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 잠시 잠을 자고 9시에 출발하자고 한다. 나는 야간에 달리기 보다는 지금 시원하고 해가 있을 때니까 나머지 계정리 임도를 벗어나 양동면 소재지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차피 에이스팀과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 혼자 행동하기도 곤란해서 그냥 근처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잠시 누워 있으려니 모기가 달려들었다. 그래서 집에서 준비한 간이 침낭(은박 돗자리 같은 것을 접어서 붙인 것)을 펴고 그 속에 들어갔다. 모기는 달려들지 않았지만 밥을 먹은지 얼마 안 되었고 또 주위가 어수선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하늘에는 눈썹달이 걸려있고 어디선가 소쩍새 울음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이대로 몸을 부리고 잤으면 좋겠지만 절반도 넘게 왔으니 이제 완주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는 오버페이스에 대한 부담감도 어느 정도 떨칠 수 있었다.
9시가 되어 자리를 정리하고 완주를 다짐하는 힘찬 함성과 함께 출발했다. 그래 해 보는 거다.
밤길은 시야가 한정되어 불편했지만 대신 시원한데다가 앞사람만 보고 가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서 한낮에 달리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휴식을 취한 상태여서 몸이 조금 가벼웠다. 계정리 임도의 남은 구간은 내리막 길이 많아서 한 시간 정도 되어서 양동 굴다리 밑을 통과했다. 그곳에 에이스 지원팀이 커피와 음료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원팀들의 행동은 일사불란했으며 신속했고 적재 적소에서 적절히 지원을 했다. 밥이면 밥, 물이면 물 커피면 커피 등 필요한 것은 뭐든지 요청만 하면 즉각 대령이었다. 그러면서도 싫은 표정 한 번 짓지 않는 지원팀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이번 랠리가 끝나면 에이스팀의 단합이 더 공고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원팀을 이번 랠리 완주의 일등 공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양동에서 매월 임도 가는 도중 어떤 사람들은 예약해 놓은 숙소로 잠을 자러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길가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쓰러져서 자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 완주의 목표를 가지고 하루 종일 땡볕 아래서 라이딩을 마치고 완주를 위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잠시 휴식을 취한 일행은 매월임도로 접어들었다. 매월임도는 콘크리트 업힐이 완만하고 길게 뻗어 있어서 휴식 때 힘을 충전한 우리들은 모두 타고 올랐다. 그리고는 긴 내리막이 있어서 신나게 달렸다. 곧바로 고래산임도가 이어졌다. 고래산 임도를 지나면 오늘 일정을 접고 약간 잠을 자기로 해서 빨리 고래산 임도를 통과하고 싶었다. 고래산 임도는 길이 잘 닦여 있었다. 어느 정도 오르막이 있다가 완만해서 이제 내리막이려니 했는데 웬걸 돌아도 돌아도 계속 오르막이었다. 그것도 중간 중간에 콘크리트 길이 섞인 지리하게 긴 오르막이었다. 한참을 올랐다. 그리고 곧 내리막길이었는데 불빛에 비친 내리막길 옆은 깎아지른 듯이 급해서 자칫 제어를 잘못하여 떨어지면 큰 사고가 날 것 같아서 안쪽으로 조심해서 다운힐을 했다. 그 길은 정말 길게 느껴졌다. 고래산 임도를 벗어나자 1시가 조금 넘었는데 그곳에 체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은 K7 지점이었는데 거리는 205킬로미터였다. 이젠 완주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지 완주를 하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고래산 임도를 나와서 조금 가자 지원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히 음식을 먹고 세 시까지 자고 일어나 출발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내 간이 침낭을 꺼냈는데 보온이 잘 되는 소재로 만든 것이라서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얕은 잠에 빠져 들었고 세 시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이 침낭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매우 쌀쌀했다. 그래서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그대로 계속 잠을 자고 싶었다. 약간 떨어진 K7 지점에는 밤새도록 달려온 사람들이 계속 경사진 길을 내려와 체크받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 그렇게 있는데 두어 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몇 명은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일어난 사람들이 부스럭거리자 지원팀이 일어나서 물을 끓여 커피를 타 주었다. 이 때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일어났는데 대부분 무릎 관절이 아프고 엉덩이가 짓물러서 아프다는 것이었다. 아하! 나만 아픈 것이 아니었구나. 다른 사람들도 아픈데 참고 있었던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어제 포기하려고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 이제 80여킬로미터 남았는데 고통도 즐기자는 마음으로 달려보자고 다짐했다.
답사를 한 퍼플님의 말에 따르면 비룡산임도(1)을 지나면 완주가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해가 내리쬐기 전에 양동임도를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새벽 4시쯤 일행은 출발을 했다. 지도의 고도표에 고래산 임도와 비룡산 임도 사이에 이름없는 고지가 하나 있었다. 왜 그곳에는 이름이 없을까 궁금했는데 거기는 마을을 통과하는 길이었는데 고개같은 것이었다. 그 마을길은 초반에 급경사에 나중에는 완만한 오르막이었다. 그곳을 넘어 포장도로를 만나 신나게 달리다가 비룡산임도에 접어들었다. 비룡산임도는 초반이 아주 급한 빨래판 업힐이었다. 일부 타고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그 사람들도 중간에 내렸다) 쓸데없이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서 내려서 끌바를 했다. 비룡산 임도 중간 지점에 싱글길이 있었다. 이곳은 매듭진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길이었는데 혼자 올라가기가 어려워서 두세 명이 먼저 올라가 자전거를 받아주고 나머지가 올라갔다.
싱글길이 끝나는 지점에 도로가 나오고 이곳에서 지원팀이 기다리고 있어서 식수 보급을 받고 아침 식사는 양동임도가 끝나는 곳에서 하기로 했다. 양동임도가 거의 끝나는 부분은 수종 갱신을 위해 벌목을 한 곳이라서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다. 그곳은 그늘도 없는 곳이라 퍼플님이 해가 내리쬐기 전에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곳이었다. 그곳을 지나 양동임도의 마지막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매곡역이라는 간이역이 있었다. 그곳에 지원팀이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고 있어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제 금왕리 임도(2)와 비룡산 임도(2)가 남아 있을 뿐이어서 마음이 느긋했다.
휴식 후 힘을 내어 금왕리 임도(2)를 향해 달렸다. 가는 길은 어젯밤 지났던 양동면 부근에 잠시 교차되는 지점이었다. 임도를 만나자 힘을 내어 가는데까지 가다가 내려서 끌바를 했는데 일행들이 그냥 타고 올랐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도 타고 오르기 시작했는데 다리도 아프지만 그 보다는 엉덩이가 쓰라려서 더 힘이 들었다. 마음 속으로 계속 암시를 주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고통마저도 즐기는 것이 랠리이다. 남들도 모두 고통스럽지만 참고 견디는 것이다. 난 다른 사람보다 의지가 강하다’ 이런 암시를 계속 주면서 앞으로 나아갔지만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엉덩이는 이제 피부가 까진 것 같았다. 앉기만 하면 불에 덴 듯이 화끈거리고 쓰라렸다. 얼마만큼 올라가다가 내리막길을 만났다. 내리막길은 엉덩이를 들고 내려갔다. 그렇게 쭉 내려가서 다음 비룡산 임도(2)로 향했다. 퍼플님의 말에 따르면 비룡산 임도(2)는 그야말로 거저 먹기라고 했다. 다운이 환상적이라고도 했다. 도로를 달리며 그 생각만 했다. 새로 포장된 아스팔트 오르막이 길게 놓여 있었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 쬐고 있었다. 모두 말없이 페달을 밟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페달을 밟고 있는 모습을 보니 쉬자는 말도 하기가 힘들었다. 비룡산 임도(2)에 들어가기 전에 지원팀이 물과 음료수를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기 그지 없었다. 잠시 쉬면서 시원한 매실차를 서너 잔이나 마시고 엉덩이에 바셀린을 발랐다.
마지막 관문 비룡산 임도(2)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바셀린을 바르니 통증이 한결 완화 되었다. 비룡산 임도(2)는 도로를 달리다가 중간에서 산길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일행을 놓치면 헤맬 것 같아 부지런히 페달질을 했다. 그렇지만 그 고개 하나가 꽤 길어서 중간에 잠시 끌바를 했고 그 사이 우리 일행은 고개 넘어 사라져버렸다. 끌바로는 안되겠다 싶어 다시 올라타 페달질을 했고 안내판에 따라 비룡산 임도(2)에 접어들게 되었다. 가면서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완만한 오르막이다가 어느 때부터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내리막은 끝없이 계속 이어져 꽤 긴 시간을 달려 내려왔다. 허리가 아플 정도였다. 비룡산 임도를 벗어나 마을을 통과하자 종료 지점인 단월레포츠 공원을 향해 달렸다. 도중 조그만 언덕이 있었으나 그건 장애가 될 수 없었다.
힘차게 페달을 밟아 종료 지점을 통과했다. 11시 45분이었다. 총 시간 31시간 45분, 거리 약 286킬로미터 110번째로 통과했다.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 내고 완주를 한 내 자신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생각해보면 100킬로미터를 지난 지점부터 오버페이스에 대한 부담 그리고 무릎 인대의 통증에 대한 두려움,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 등으로 자칫 포기할 뻔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함께 한 일행의 격려와 지원팀의 도움으로 무사히 완주를 한 것이다. 코스는 비록 평이했고 힘만 있었다면 끌바를 할 구간이 거의 없었지만 땡볕에 체력 소모가 많았고 또 오랜 시간을 안장에 앉아서 라이딩을 했기 때문에 엉덩이가 아파서 고생을 했다. 이 점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처녀 출전한 280랠리. 힘이 들었지만 완주는 했다. 처음 지도를 보고 고도표를 봤을 때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임도였던 덕분에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고 280킬로미터 거리라는 장애물 앞에서 위축되었던 나 자신을 이겨내고 완주를 한 것이다. 그리고 오버페이스로 인해 잠시 무기력하고 자신감을 잃었던 자신이 부끄럽게도 생각되었지만 그 과정을 극복한 나 자신이 더 자랑스럽게 생각되었다. 무릎 통증이 발생하더라도 180킬로미터 정도를 더 갈 수도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자연 속에서 더 자신있고 강한 내가 된 것이다. 만약 평범하게 그냥 재미만 느끼며 완주했다면 이런 뿌듯함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 옛날 화랑들처럼 조국을 위하는 마음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불굴의 정신력이 길러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어떤 코스가 주어질까 벌써부터 11회 랠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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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독수리님의 댓글
독수리 작성일
랠리중 신바람님께서, 부상자 구난요청 전화 주셔서 빠른 구조가 이뤄질수 있었습니다.
힘든 랠리중에도 그런 모법을 보여주신 님께 다시 감사 합니다.

류지님의 댓글
류지 작성일
안녕하세요~ 신바람님, 280랠리 함께 부천에서 출발한 류지입니다.
빠른 시간에 완주하시고 먼저 돌아가셨다고 해서 '역시, 대단하신분이야~'라고 생각하며 무리없이 타신 줄 알았는데, 이런 고난을 겪고 이겨내셨군요~ 대단하십니다. ㅎㅎ 저 역시 왼쪽 무릎과 발목인대가 아파서 후반부 라이딩 내내 고생했답니다. 지난주에는 가벼운 도로라이딩갔었는데, 아직도 회복이 안되었더라구요~ㅎㅎ 빨리 회복하시고, 기회가 된다면 함께 라이딩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바람1님의 댓글
신바람1 작성일
독수리님 랠리 운영에 고생 많으셨고 덕분에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류지님 빨리 회복하시어 원적산에서 함께 라이딩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연락 주십시오.

알샵교장님의 댓글
알샵교장 작성일
신바람 2도 있고 신바람 원조도 있나요?ㅎㅎ 아무튼 신바람 1님 처녀 출전하여 랠리 성공을 축하합니다.
대부분 처녀 출전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이 출발과 동시에 기록을 목표로 처음부터 치달리는 초짐승의 선두조들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오버페이스를 많이 하게되지요. 금년의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 280에 출전하실 땐 랠리 운영을 잘하셔서 계속 랠리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양평 랠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바람1님의 댓글
신바람1 작성일
네 감사합니다. 원래 제가 신바람 원조인데 280 싸이트에 어느 분이 먼저 등록을 하는 바람에 신바람을 사용할 수 없어서 신바람1으로 등록했습니다. 나중에 신바람2가 나오면 신바람팀을 한 번 만들어볼 생각입니다.ㅎㅎㅎ
격려의 말씀 감사드리고 다음에는 더 짜임새있게 완주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처 댓글을 달지 못했는데 랠리 뒷처리에 애 많이 쓰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