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 그리고 절반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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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 라이딩 거리가 포장도로 106km 밖에 안돼는 신참.
그런 미천한 경력의 소유자가 280랠리에 도전을 한 것이다.
그것도 무지원에 24시간 이내 완주를 목표로....
무모한 도전이란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비록 짧은 구간이지만 평균 주5일을 자전거 타고 산을 오르는 사람으로서, 주변에서 짐승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정적인 나 였기에 280이라고 해서 별 다른 게 있겠냐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동호회에서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한 선배들의 얘기를 들을 때 마다 그건 본인의 의지나 정신력이 약해서 그런 것 일거라 일축하고, 준비만 철저히 잘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거라 자신을 했다.
동호회에서는 2008년도 여성유일의 완주자 이신 백마님을 비롯하여 전투조 10명, 지원조 4명으로 280랠리 출전 팀을 꾸려서 각자 3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양평으로 향했다. 금요일 오후에 부산을 출발해서 양평에 도착한 것은 저녁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텐트를 치고, 대략 정리가 끝나고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설레임인지 불안감인지 모르는 흥분으로 쉽게 잠이 들지 못하다가 언뜻 잠이 들었나 보다. 동료가 흔들어 깨우길래 일어난 시간이 새벽 3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전 행사참여를 위해 레포츠 공원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몇 번의 참가경험이 있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자전거를 점검한 뒤 레포츠 공원으로 향했다.
참가자가 900명이라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막상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으니 어마어마했다. 그제서야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내가 280에 도전하는구나. 다들 가벼운 차림인데 내 등엔 묵직한 배낭이 메여져 있다. 가능하면 팀의 지원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해보겠다는 정말이지 무모한 계획 때문이다. 배낭의 무게만 대략 16kg정도였으나 ‘난 할 수 있다’는 일념하나로 출발했다. 내 자전거가 13kg이니 등에 올마급 자전거를 한 대 더 짊어지고 가는 셈이었다. 출발 후 초반은 그런대로 순조로웠다. 워낙 많은 인원들이 동시에 출발해서 팀원들과 헤어진 체 대열을 따라 무작정 페달을 저었다. 시원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장도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나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향소리임도 내 대략 25km를 넘어설 무렵이었다. 욕심이 앞서서 일까? 오른 쪽 무릎 뒤쪽 인대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랠리 1주일 전부터 자전거를 타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오늘 준비운동을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걸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다리뿐만 아니라 무거운 배낭에 짓눌린 허리까지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산음임도를 지나면서 왼쪽무릎마저 통증이 느껴졌다. 오른쪽 무릎이 아파서 계속 왼쪽 다리에 힘을 더 준 탓인 것 같았다. K1지점에 도착하니 지원조가 있길래 에어파스를 뿌리고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도토리코스, 클린턴코스를 지나고 중간 보급이 계획된 100km인근 C2지점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심한 통증으로 컨디션이 엉망이 되어버린 뒤였다. 아쉽지만 무지원 완주를 포기하고, 등에 진 배낭을 지원조에게 넘겨줬다. 배낭을 벗어낸 것 만으로도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양쪽무릎에 맨소래담 마사지를 하고, 에어파스를 뿌려 봤지만 통증은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자전거를 못 탈 정도는 아니었기에 지원조에서 제공한 시원한 수박으로 갈증을 식히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신론리임도, 갈운리임도, 몰운임도를 지나 금왕리임도(1)내 140km 지점을 지나면서 부터는 왼쪽무릎의 통증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심해졌다. 페달링을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업힐에서도 페달링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업힐에서는 거의 끌바를 하고, 다운힐에서는 자전거에 몸을 실은 채 그저 가는대로 굴러 내려갔다. 계정리임도 K6지점에서 지원조가 기다린다는 연락이 있었으니 거기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통증을 꾹꾹 참고 달렸다. 하지만 K6에 도착했을 때, 지원조가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전화를 해보니 한참 뒤쪽인 C12지점에서 선두조에서 뒤쳐진 팀원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순간 당혹스러웠지만 애초에 무지원으로 가기로 했던 내가 지원조를 힘들게 할 수 없다는 마음에 일단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지원조를 놓쳐서일까 통증이 점점 더 심하게 느껴졌다. 하늘숲 추모공원을 지나고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서 가슴 속부터 목구멍으로 무언가 울컥 받쳐왔다. 내가 이것 밖에 안 된단 말인가 하는 자책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임도를 벗어나 눈앞에 도로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이제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D2지점에 도착하여 도로가에 털썩 주저앉아서 지원조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에서 지원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여왔다. 겨우 호흡을 가다듬고, 도저히 페달링을 할 수 없을 지경이니 압박붕대가 있으면 좀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지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니 180km 부근에 있는 D4지점의 농협마트 앞에 가서 기다리란다. 또 한 번 눈앞이 깜깜했지만 달리 선택할 방법은 없었다. 중도포기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농협마트입구까지 갔다. 잠시 후, 지원차량이 도착하고 통증 부위에 에어파스를 뿌리고 압박붕대를 동여맸다. 그것도 붕대가 하나밖에 없어서 상대적으로 통증이 심한 왼쪽 무릎에만 감고, 오른쪽 무릎은 주최 측에서 나눠준 코스가 그려진 손수건으로 죄어 묶었다.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10여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숙소로 이동했다. 통증은 여전했다. 압박붕대를 감았음에도 페달링이 되질 않았다. 매월임도 입구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않는다. 심한 통증으로 인해 반 쯤 정신이 나간채로 그저 반복적으로 페달만 밟았던 것 같다. 매월임도 입구에 도착하니, 마침 많은 사람들이 끌바로 진행하고 있었다. 나도 내려서 끌바를 했다. 걷는 조차도 쉽지는 않았지만 무릎을 많이 사용하지 않으니, 타고 가는 것보단 그나마 수월했다. 그러면서도 남은 랠리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직 근100km 구간이 남아있는데 이런 상태라면 더 이상의 진행은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호회 10명의 참가자 중에 가장 먼저 포기를 하는 불명예를 떠 안는 것은 물론이요, 전혀 준비도 되지않은 몸으로 큰소리만 치고 랠리에 참가했다는 비아냥도 들릴 것 같았다. 떠나올 때 파이팅을 외치며 “아빠 힘내세요” 목청높여 불러주던 초등학교 6학년, 2학년짜리 아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한편에선 완주 못해도 좋으니까 절대 무리하지 말고 돌아오라던 아내의 걱정스런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이들의 힘찬 응원으로도, 누구보다 강한 나의 의지로도 더 이상의 랠리 진행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숙소까지 가는 길이 어찌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지, 앞선 지원지점에서 포기하고 차량에 오르지않은 것이 후회될 지경이었다. 힘겹게 D9지점의 숙소에 도착해서 동료들에게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담배 한 개피를 피워물고 밤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첫 출전이지만 너무나 간절히 완주를 원했었는데...
그 순간 지원조에서 진통제를 내 놓았다. D4지점에서 압박붕대를 전해주고 숙소로 오는길에 약국을 수소문해서 구했다고 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체력이 소진되어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통증만 줄어든다면 지옥까지라도 갈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한 알을 진통제를 먹었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지원조에서 준비해준 라면과 공기밥을 먹었다. 그러는 사이 통증이 한결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가야겠다며 다시 출발준비를 하니 지원조에서 잠시라도 쉬었다 가라고 만류를 했다. 약효가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가야했기에 진통제 몇 알 더 챙서 일어났다. 약효가 얼마나 갈지 모르니 통증이 심해지면 더 먹어야만 했다.
좀 더 쉬어가겠다는 두 명의 동료를 숙소에 남겨둔 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지원조들의 조심하라는 인사를 뒤로 하고 고래산 임도를 향해 홀로 출발하던 시간이 밤 11시 30분 쯤이었다. 그렇게 또 다시 길고 지루한 임도를 밤새워 달렸다. 약효가 떨어지고 통증이 심해지면 또 다시 진통제를 먹고, 또 달리기를 반복했다. 통증이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가신 것 아니었다. 그저 겨우겨우 페달링을 할수 있을 정도의 통증이 있었던 것이다. 캄캄한 임도에는 간간이 자전거의 불빛들이 눈에 띄었다. 길가에 쓰러져 잠든 사람도 있고, 몇 명씩 모여앉아 휴식을 취하는 참가자들도 있고, 그럭저럭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민가지역의 구멍가게 근처에는 많은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들도 보였다.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난 쉴 수 없었다. 달릴 수 있을 때 달려야만 했다. 그저 끝이 보일때까지 정해진 길을 따라 하염없이 비척거리며 갈 뿐이었다. 고래산임도 부터는 단 한번의 휴식도 하지않고 달렸다. 비룡산임도를 지나고, 양동임도를 달리는 중에 날이 밝아오고, 금왕리임도(2)를 지나 좁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내려가자 K10 지점에 있는 마지막 체크 포인트가 나타났다. 그제서야 이제 끝이 멀지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몇 명이나 지나갔느냐고 하니 20명이 지났다고 알려줬다. 족히 200명은 지나 갔을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20명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마지막 임도를 향해 더욱 힘을 내서 달려보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오히려 통증만 가중될 뿐이었다. 도로 포장공사 구간을 지나 E12지점에서 시작되는 마지막 임도에 들어서자 임도 주변으로 산딸기들이 빨갛게 익어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동안 많이도 스쳐지났지만 지금까지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본체만체 했었는데, 끝이 보인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던 것일까, 자전거에서 내려 딸기 한줌을 따먹고 이동을 했다. 고통으로 얼룩진 나의 첫 번째 280랠리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랠리의 특성은 똑같은 임도가 반복되는 지루함과의 싸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끝없는 임도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난 그 모든 과정을 견뎌내고 마지막 임도에서의 여유를 느끼고 즐기고 있었다. 마음이 풀어져서일까, 또 악재가 터졌다. 여태껏 잘 달려주던 자전거가 방심하는 순간에 펑크가 난 것이다. 펑크정도야 대수롭지않은 일이라, 예비 튜브로 교체하고 바람을 넣었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타이어를 해체하고 튜브를 확인하니, 새 튜브에도 교체과정에서 펑크가 난 상태였다. 할 수없이 자전거를 끌고 가면서 지원조에게 전화를 해 봤지만 산중이라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한참을 끌고 가다가 뒤에서 달려오는 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고맙게도 흔쾌히 튜브를 내어 주셨다. 가던 길을 멈추고 튜브 교체까지 도와주시려는 걸 사양하고 어서 가시라고 했다. 문경세제 엠티비 소속의 선수였다. 이 자리를 빌어 그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번엔 조심스럽게 튜브를 교체하고 바람을 넣었다. 탱탱하게 바람을 넣고 뒷바퀴를 조립하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어변속이 되지 않았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확인해보니, 뒷기어 변속케이블의 와이어가 끊어져 있었다. 주저앉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대상없는 욕설이 내뱉어져 나왔다. 임도에 주저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며 마음을 진정 시키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서 또다시 끌바로 진행을 했다. 다운힐을 만나야만 자전거에 올라타고 내려갈수 있었다. 끌바를 하는 틈틈이 지원조에게 전화를 했으나 한참이 지나서야 통화가 되었다. 지원조가 근처로 이동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으니 일단 임도 끝까지 걸어서라도 나오라는 답변이 왔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10km정도의 거리를 끌다 타다를 반복했다. 태양은 점점 뜨거워지고, 이제 체력도 바닥이 났는지 다리도 풀리고, 통증도 더 심해졌다. 마지막 임도를 지나고 아스팔트 길을따라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골인지점을 2.6km남겨둔 E16지점의 굴다리 아래를 지날 무렵에야 지원차량이 도착했고, 긴급히 정비지원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야 겨우 남은 구간이나마 자전거를 타고 달릴수 있었다. 마지막 2.6km의 구간에서는 30시간 가까이 나를 괴롭혀 왔던 통증도, 피로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페달링은 어느때 보다 힘차고 부드러웠다. 날아가는 것 같은 가벼운 기분으로 스피드 경기를 하듯이 내게 남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결승점으로 내달렸다.
30시간 8분. 그렇게 무모하고, 고통스러웠던 나의 첫 280 랠리는 끝이 났다.
애초에 계획했던 무지원, 24시간내 완주는 이루지 못했지만 난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에서 이겨내고야 말았다. 달콤한 단 몇 분간의 수면도, 변변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홀로 무릎이 끊어질 듯 한 통증과 싸우며 밤새워 달려서 이뤄낸 결과이기에 난 지금 누구보다 뿌듯하고 행복하다.
이 자리를 빌어 많은 분들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먼저 제 10회 양평280랠리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고생하신 주최측의 모든분들과 무모하게 덤비는 신참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힘들어 할 때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MTB를 사랑하는 모임의 전투조와 지원조분들, 낯선 이에게 망설임없이 튜브를 제공해주신 문경세제 MTB소속의 회원님, 그리고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나를향해 파이팅을 외쳐주며 지나시던 많은 참가자 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나의 무모했던 도전은 더 크고 값진 의미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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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독수리님의 댓글
독수리 작성일
무모한 도전이라 하셨습니까.?
많은것들을 알았다고 생각 합니다.
굳건한 정신력으로 완주를 하셨습니다.
랠리는 달리다 보면 한마음 입니다.
다음랠리때 혹 또오시거든 이번에 받았던것들을 배풀수 있는 여유가 있을것 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남시진님의 댓글
남시진 작성일
독수리님 말씀처럼 참 많은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저도 이번 280랠리를 계기로 좀더 성숙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신바람1님의 댓글
신바람1 작성일
장거리를 타다보면 무릎 통증이 대부분 오는데 너무 빨리 와서 고생하셨네요. 저도 같은 증상으로 고생을 해 봐서 그 심정 구구절절이 이해되며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번 랠리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얻어셔서 즐거운 라이딩 하시길 빕니다.

무용남님의 댓글
무용남 작성일알텀도 잘 키우시고 자전거도 고수시고 부럽습니다. 완주하신거 축하드리고 내년에는 저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 누군지 궁금하시죠 ? 울 마누라한테 얘기 마니 들었습니다.

남시진님의 댓글
남시진 작성일
신바람님, 감사합니다. 신바람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잔차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무용남님, 반갑습니다. 사모님께 가끔 소식 듣습니다....ㅎㅎ
양평에 참가하시는 줄 알았으면 찾아뵙고 인사라도 드렸을걸....아쉽습니다.
담번에 참가하시면 사모님 통해서 소식 주십시오.
꼭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엔 꼭 도전하시어 큰 성취감 얻으시길 바라옵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